겨울 제주 episode 3.

바다와 노을

by 태생적 오지라퍼

비행기는 아이 둘을 데리고 부모님과 같이 타는 승객이 늦게 탑승하는 바람에

늦은 출발이 되고(미안한 표정이 아니더라.)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좌석에서 방방 뛰어서

계속 앉아달라는 기내 방송이 나오는 우여곡절 끝에

(이 문제는 백분 토론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십 여분 늦게 제주에 도착했다.

날이 하나도 안 추워서

(봄날도 이런 봄날이 없다.

바람 한 점 없는 제주 낯설다.)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별다른 계획없이 오늘은 애월쪽으로 바다를 한바퀴 돌아서 서귀포 숙소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비행기 착륙 이후에 급하게 검색해서 찾은

늦은 점심을 먹은 식당은 마침 외관도 제주스러웠고

오랜만에 먹은 옥돔구이와 해물 전복 찌개가 맛나서 여행의 시작을 기쁘게 해주었고

육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꽃들이 아직 군데군데 피어있어서 신기했고

바닷가를 가다 서다 걷다 가다 서다 걷다를 하는 시간들이 멋지기만 했다.

이 맛에 제주오는구나 싶다.


해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떠하냐.

그냥 멋진 바다와 하늘과 수평선과 등대와

풍력 발전기와 듬성듬성 선인장과

그딴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으면 되었다.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 더더욱 마음에

쏙 든다.

크리스마스 명동 입구를 좋아할 나이는 진즉에 지났다.

그리고는 수월봉을 지나 잘못들었나 싶은 길에서 커브를 도는 순간

후배가 와봤다는 멋진 위치의 베이커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다. 오늘의 해피 심쿵 포인트. 바다와 노을이다.

한옥 스타일의 그곳에서 일몰도 보고 작은 사이즈이지만 동백도 보고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꼭 먹고 싶었던 딸기 조각 케이크도 먹고

제주 당근 쥬스도 마셨으니 오늘 몫의 행복은

모두 200프로 충전되었다.

집에 두고 온 고양이 설이가 조금은 걱정되지만

설이도 나름대로 위기 상황을 잘 넘겨주리라 생각한다.

똘똘하고 지혜롭게 말이다.


아직 오늘의 미션 하나가 남았다.

온라인 회의가 있다.

오늘 중요한 것들을 결정지어야 한다.

비즈니스 호텔방에서 컵라면 하나를 먹고

옥수수빵 반쪽까지 먹고는

회의 참석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이러려고 무겁게 노트북을 들고 왔던 거다.

회의가 끝나면 아마 꿀잠 예약일거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 멋진 제주를 위해 운전해준 후배에게

엄청 감사하다.

내일의 제주도 역시 멋질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에게 제주는 실망감을 남겨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믿고보는 제주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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