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꽤 길었지만 순삭했다.
갑자기 하늘이 붉게 보여서 자동으로 튀어나갔다.
제주의 일출이다.
매일 18층 아파트에서 보던 일출인데 새삼스럽다.
그리고 보니 호텔방에서 멀리 바다도 옆구리로 보이기는 한다.
아침으로는 오랜만에 사과 한 알을 베어먹었다.
첫 코스는 근처 포구이고
어젯밤 오징어잡이배 불빛을 호텔 창으로 많이 보았는데
이제 막 항구에 배를 대고 모두들 쉬러 들어가신 듯 아직도 흔들리는 배들이 보인다.
그리고는 숨이 쉼이 되는 생태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이상하게 이번 제주에서는 한라산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금까지는 바다만 보느라고
산과 오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관리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돋보인 그 공원에서
동백도 보고 유채꽃도 보고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귤나무도 보고
때가 아닌데 피어있던 믿을 수 없는 철쭉꽃까지 보고
청귤차 한잔을 마시고는
아침 겸 점심으로 생선구이를 먹으러 나섰다.
당일 막 잡은 생선을 구워주는 한 상이 15,000원인 것도 감사한데
이름 모를 생선들과(가자미랑 고등어만 알겠다. 낚시 프로그램에서 봤던 작은 생선들 5종류가 올라온다.)
밑반찬이 맛나서 엄청 먹었다.
집에서 비린내와 기름 냄새로 생선구이 요리를
가급적 피했던 나로서는 대단한 발전이고 댕큐였다.
브런치라고 생각하면 모두 서양식 요리를 떠올릴것이다만
생선구이 한상 브런치는 색달랐고
제주 바닷가라 가능한 것이었다.
나름 제주다움을 찾는 먹거리 탐색 중이다.
그리고는 동행인 후배와 의기투합하여
<김성근의 겨울방학> 이라는 프로그램의
제주 여행편의 숙소였던 <호호산장>을 찾아나섰다.
현재 어려운 상황인 <불꽃야구> 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다는 의미와 기도를 담고서 말이다.
사장님께서 흔쾌히 한바퀴 돌아보고 사진 촬영하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우리는 이미 여러번 돌려본 그 영상에서
고기구워먹던 곳, 귤나무 들 그리고 기타 등등을 기억해내면서 멋진 뷰를 눈에 담았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여행이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다음번 제주 여행 숙소는 꼭 여기로 하자는 계획도 세우면서 말이다.
물론 올해 처음 맡는 은목서 나무 향기도 최고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라고 주저없이
손꼽을 수 있겠다.
오후는 미술관과 박물관 나들이였다.
미리 예약한 수풍석 박물관은 하루에 20여명 정도만 관람이 가능한 사유지 내 공간인데
박물관이지만 공간과 하늘과 나무와 땅이 함께하는 예술 작품이다.
미술관은 10여년전 지금은 아파서 꼼짝 못하는 동생과 함께였고
박물관은 몇 년전 지인들과 한 번 보았지만
한번 더 보고 싶은 곳이었다.
바람과 물과 돌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제주 자연과 어우러진 그곳에서
나는 또 전공을 살려서 특별한 고등학교에 합격했다는 오늘 생전 처음 본 관람객 가족에게
그 학교에 근무하는 후배 교사를 소개해주고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태생적 오지라퍼가 분명하다.
그리고는 동행인 후배와 나의 또 한가지 공통 관심거리 중 하나인
제주 멋진 골프장 18번홀이 보이는 그늘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른 사람들이 홀공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귀포 올레시장에서는 전복버터볶음밥을 나누어먹고
제주 귤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갔던 베이커리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쿠폰을 안썼던 것과
오늘 그 쿠폰을 쓸 수 있던 또다른 카페에 너무 늦게 들어간 것만 빼고는 완벽한 하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꽃야구 시즌2>를 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와서 눈물이 찔끔나는 하루 마무리이다.
이 모든 것이 오늘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니 하루가 꽤 길었다.
길었지만 순삭한 오묘한 느낌.
그것이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