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양이 집사가 분명하다.
나의 고양이 설이를 남편에게만 맡겨두고
집을 비운 적은 처음이다.
고양이를 좋아라하는 조카에게 맡긴적은 있었어도.
걱정이 많았지만 설이의 영특함과 회복탄력성을 믿었다.
남편을 믿지는 않았다.
다행히 제주에서 돌아온 나에게 삐지지도 않았고 멀리하지도 않고 현관입구까지 따라나와서
주위를 빙빙도는 마냥 기쁜 환대를 해주어서 안심이다.
그리고는 다른 날과는 달리 어젯밤.
내 침대 맞은편 옷장의 숨박꼭질 장소에서
나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잠을 잤다.
내가 또 몰래 도망갈까 싶었나보다.
제주 가는 날 어디론가 숨어있어서
내가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제주 있는 동안 즐거워서 고양이 생각을 매번 한 것은 아니었다.
갈아입을 옷에 설이 긴 털이 하나 묻어있거나
지나가는 길에 고양이가 있거나
(제주에는 고양이가 엄청 많다. 개도 묶어놓지 않고 기르는 곳들도 있다. 조금 무섭기는 하다만.
왜 고양이는 안무서운데 개는 무서운 것이냐? 편향적 사고이다.)
고양이가 들어간 소품들을 보았을 때이다.
정말 이쁜 고양이들이 접시에 그려져있기도 하고
키링이나 스티커나 다양한 품목별로 이쁨과 매력을 뽐내고 있으면
눈이 휘등그레져서 맥시멀리즘 신봉자로
순간 변신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들어간 몇 몇 전시관의 기념품샵에서 다행히도 소유욕을 누르고
탄소중립 연구 인포그래픽을 도와준 연구팀의 따님에게 줄 카라멜과 과자 종류를 사는 것으로 선방했다.
스누피가 그려진 맨투맨 티셔츠를 살까말까 고민은 했었다.
작년과 올해 맨투맨 티셔츠를 애용하고 있는 중이다.
영포티가 아니라 영식스티라고 웃을지도 모르겠다만.
왜 그런지는 딱히 모르겠으나 편해서일 것이다.
니트는 속에 무언가를 하나 더 입어야는데
(그래서 신경을 두 배 써야하는데 이제 그 일조차 버거운거다.)
맨투맨티는 그것 하나의 착장으로 모두 커버가 된다.
물론 안에 기모가 장착된 겨울용이다.
오늘은 드디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확인해보니 탄소중립 연구비 입금되었고
(그간의 나라장터 우여곡절을 모두 이겨냈다. 장하다.)
따라서 연구팀원들에게 소정의 연구비를 올해 안에 입금하게 되어서 기쁘기 한량없다.
사업자 등록한 계좌에 첫 입금이고 첫 연구 수주이고
첫 연구비 이체이다.
계속해서 연구나 컨설팅 관련 일거리가 들어올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배우는 것은 분명 있다.
물론 멘붕이 오는 경우가 더더욱 많지만.
이 땅의 개인 사업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겠고
(남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공공기업이 얼마나 큰 뒷배인지도 알 수 있었고
(적어도 월급이 제 때 안나올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말이다.)
노동의 댓가가 너무 조금이라는 것도 속상하지만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 노동운동가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보다 즐거움은 없다.
정년 퇴직 나이나 은퇴 연령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앞으로 2~3년은 일할 수 있다. 건강하다면.
내 생각으로는.
이 모든 느낌이 고양이가 옆에 있을 때 주는 안온함과 비슷하다.
막상 옆에서 고양이가 무언가 일을 만들면
짜증이 날 때도 분명 있지만.
(제주 다녀서 집에 들어오는 길에
며칠을 고민하고 주문한 고양이 그림이 박힌 겨울 양말이 배송되어 왔더라.
동생이랑 나눠 신어야겠다.
그런데 어떤 색을 좋아하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을 가늠할 수 없을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다. 어렸을때라면 분명 한번에 알아맞췄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