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뉴 이어.
언제부터인가 나의 나이를 세지 않게 되었다.
굳이 계산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회피기제의 발동이다.
그래도 가끔은 나이를 써야할때도 있고
어디는 아직도 만나이를 적으라고도 하고
어디는 그냥 나이를 적으라고도 한다.
대충 쓴다. 그것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4학년이 되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고
5학년이 되었을 때 그래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많을거라 생각했고
6학년이 되었을 때 애써 부인하고 싶었지만
이제 누가 봐도 할머니 얼굴이고(진짜 할머니라도 되었다면 덜 억울하겠다.)
염색을 한 달만 안하면 앞머리가 온통 흰머리이고
눈 아래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안경으로 가린다.
안경을 쓰는 이유가 시력때문이기도 하고
눈주름 커버용이기도 하다.
아들 녀석이 가고나니 기력이 똑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누워서 뒤척대다가
(고양이 설이도 그런지 또 내방 옷장 밑 비밀의 장소에 숨어서 자고 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책상위에 앉아본다.
이럴 때는 기운이 생기는 글을 읽는 것이 최선이다.
나에게 마로니에 전국여성 백일장 장원의 영광을 가져다 준 작품이고
그 작품이 실렸던 당대 유명한 글쓰는 사람들에게는 의미있는 잡지였다.
2001년 10월이니 막 박사과정에 들어갔던 해이고
학업을 이유로 10개월간 휴직을 했던 그 때이다.
그래서 평일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참가가 가능했었다.
마로니에 공원은 나에게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고(지금도 그러하다.)
겸사겸사 머리를 식히러 나갔던 생전 처음 도전해보는 백일장이었다.(학교의 교내 행사 말고)
마로니에 공원을 바라보는 커피숍에서 글을 쓰고
그 주변을 걸어다니며 산책했던 멋진 시간이었는데
심사평을 이야기하는데 내 작품 이야기가 나오는 듯하여 살짝 기대를 했었다.
여기서 장원이면 등단이라했는데 그 뒤로 무언가 증서가 오거나 회비를 냈던 기억은 없다.
등단을 하고 안하고가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만.
[ 오후 3시
- 그 늦지 않음에 대하여
분침과 시침이 있는
낡은 아날로그 시계를 이용하여
방향을 찾아내는 법을 아십니까?
작은 바늘을 태양쪽으로 향하게 하고
큰 바늘이 이루는 각을 반으로 접으면
그 사잇각이 남쪽을 가리킨다는군요.
지금은 오후 3시.
내 인생의 남쪽도
이런 방법으로 찾을 수 있을런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의
오후 3시 방향을 살펴보았습니다.
끊임없이 태어나는 젊은별, 밝은별들이 모여모여
아직도 끝없는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는군요.
여름철 북극성의 오후 3시 방향에는
아직도 다정하기만한
견우와 직녀가 아수라이 보인다더군요.
지금은 오후 3시.
낡은 망원경을 꺼내들고
아직도 찾지 못한
내 인생의 좌표를 찾아봅니다.
두 종류의 시계를 갖고 살았습니다.
두 얼굴의 가면을 쓰고 살아왔습니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공식적이며 늘상 바쁘게 허둥대는
시계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암팡져보이기만 한 검은 고양이와
비공식적이며 한없이 늘어져
추스르기조차 힘든
시계소리에 놀라 겁먹은 흰 고양이 같은 삶의 대비
그 갈림길이 오후 3시입니다.
새로움과 낯설음 그리고 어정쩡함이 섞여있는 내 인생의 오후 3시.
그러나
그 늦지 않았음에 대하여
어깨 위에 놓여있는 짐들의 무게에 대하여
이젠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이제 고작 오후 3시일 뿐입니다. ]
아마 <오후 3시>라는 주제는 행사 주최측에서 제시한 몇 개의 주제 중 한가지였던 것 같다.
늦은 나이에 다시 박사 공부에 입문하면서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아들 녀석 뒷바라지에나 신경을 더 쓰는게 맞는게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너무 늦은 것이지 아닌지(시간적으로 늦은 것은 맞으나 시기상으로 그 이전에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고민했던 나에게 힘을 주기 위해 썼던 글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고양이는 키우지 않았고
천문학 강의를 듣고 있어서 우주나 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만 과학적인 팩트는 아니다.
그때보다 무려 25년이 지났고
오늘 현재 나의 나이는 하루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일몰 즈음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해가 지고 깜깜한 밤에도 무언가 일들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니(나는 비록 초저녁잠이 많지만)
너무 암울하게 한 살을 더 먹는 새해를 맞이하지는 말라는 내 마음대로의 해석을 덧붙인다.
해피 뉴 이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