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이 될지라도 우선 시작한다.
작심삼일은 뭐 부지기수로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어려서는 새해가 되면 일단 방청소를 하고
무언가 계획을 꼼꼼이 세우고
하루를 48시간처럼 빽빽하게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3일쯤이 지나면 지레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낮잠을 자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주로 공부이거나 다이어트이거나 운동이거나 그랬던 것 같다.
그때마다 작심삼일이란 사자성어는 참으로 용하기도 하다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획의 정도와 수준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끊임없이 무언가에 대한 새해 새 계획의 욕구는 존재했고
가열차게 새해를 시작하곤 했었다.
그 기반에는 1월이 아직 방학이 아니라는 점도 작용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의 중고등학교는 대체로
1월 10일 이전에 졸업식까지를 모두 마치거나 아니면
12월말에 방학을 하고 2월에 며칠 학교에 나와서 졸업식을 하던가 하는
두가지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나의 마지막 두 개 학교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했으므로
1월은 늘상 학기말의 바쁜 업무의 날들이었다.
2025년은 더더욱 그랬다.
시험도 1월에 내 업무인 학교 축제도 1월이었으니
새 계획 세운 날들보다도 더한층 바쁘고 정신없는 날들이었고
그 와중에 나는 A형 독감에도 걸렸었고
그래서 잠시 쓰러지기도 했었으니
가장 번잡하고 힘든 새해맞이였던 셈이다.
친구는 더 건강하고 더 즐거운 새해를 보내자고
덕담을 보내주었으나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은 둘 다 알고 있다.
결혼하고서는 양쪽 집 다 제사를 지내는 형편이라
친정은 신정을 시댁은 구정을 지내는 것으로 결정되어서(딸만 있는 친정집의 양보였다만)
신정은 친정에서 형제들과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그걸 못한지 10여년이 되어간다.
부모님 두 분이 본격적으로 편찮으시기 전까지의
신정 스케쥴이었는데
제사 음식 그거 조끔 만들기가 귀찮아서 그걸 몰랐었다.
명절에 갈 곳이 있다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때는 몰랐었다.
내 맘대로 명절에 푹 낮잠을 자고 싶었으나 그걸 못했던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언제든지 누워서 잠잘 수 있지만 잠이 쉽게 들지는 않는 지금보다 백배는 더 좋았던 때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왜 그리 지나야만 늦게야만 알게 되는 것이냐?
참 못났다.
그림 그릴 탁자가 없다고 한탄만 하고
탁자를 하나 살까 온라인 쇼핑을 들여다보다가
탁자가 없어서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는(팩트체크가 그래서 중요하다.)
용기를 내어 다시 그림 그리기에 도전해본다.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식탁을 치우고
그림 도구를 꺼내고 세팅하는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그림이 2025년 8월 7일이었고
대전 성심당 빵을 위해 SRT를 타고 내려가는 기차에서 봤던 책에 있던 사진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스케치북을 펴는데
근 6개월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매일 한 편 이상의 브런치를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노력한지 거의 2년이 되어가니
매일 한 점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1년간 노력한다면
실력이 조금은 향상되지 않을까나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새해에 조심해야 할 것 중 한 가지가
나이 한 살을 더먹는 것에 대한 무한 우울감에 빠지지 않기이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꽤 어려운 소용돌이이니
나만 나이 먹는 거 아니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여보자.
제주에서 찍은 많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보는 것이 일단 미션이다.
그림을 그리는 나를 뭐하는 거냐 싶은 표정으로 고양이 설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아직 보름달이 안 보인다.
중요한 소원을 빌어야는데.(어제 미리 빌기는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