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지 못한 스타일
결혼 후 대기업 회사원일때의 남편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스타일이었고
(무슨 회식이 그리 날마다 주구장창 있는거냐)
그러다가 퇴사하고 자기 사업체를 지방에서 운영할 때는 자기 편한대로 마음대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되었고
(점점 먼 지방으로 회사가 이동하기도 했고
저녁 술자리를 좋아라하는 스타일이기도 했고
자기가 집을 날려 먹었다는 자괴감 때문인지
공장 내 기숙사에서 주로 거주했고
명절이나 주말에 시어머님댁에서 만나는 상황을 선호했다.)
그리고는 중병에 걸려서 먹거리가 중요하고 혼자 있을 자신이 없으니
말 한마디 없이 집으로 들어와서 삼시세끼를 함께한지 1년이 되어간다.
내가 밥과 반찬하는 것을 싫어라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그런 나라도 버거운 점이 있으니
그것은 꼭 남편이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서 식사 시간을 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항암약을 먹는 기간에는 그러려니 한다만
안먹는 기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시간대가 나랑 참 안 맞는다.
특히 면류를 준비하면 5분 일찍이 되기도 하는데
(퍼진 면을 싫어한다.)
그러면 꼭 시간이 아직 안되었다고 한마디를 하는
그런 꼰대 스타일이다.
내가 알람시계는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뭐 별 하는 일도 없는데 일찍 안자고 느즈막히 일어나는 스타일이다.
물론 자다가 화장실도 가고 많은 생각에 뒤척이느라 여러번 깨기도 한다만.
오늘처럼 5시에 일어나면 남편이 정해놓은 자신의
아침 식사 시간 8시가 되기 전에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아침에 반짝 에너지와 정신이 최고조인 상태라 일어나자마자 그날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습관이 있으니
7시 반이면 이미 배가 고파와서 남편 아침을 준비하다가 내 아침은 먼저 먹게 된다.
물론 우아하게 먹는 아침이 절대 아니고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허겁지겁 맛보고 간보는 형태가 된다.
점심도 저녁 식사도 비슷한 양상이다.
13시를 기다리다가 간식을 집어먹고 상 차리다가 먹고
20시를 기다리다가 음식 준비하면서 먹고
초저녁잠이 몰려와서 졸고.
이래저래 우아한 식탁에서 우아한 식사를 둘이 같이 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사람이 우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기는 하다만.
내가 남편에게 시간을 맞추면 되는데 그러자니
저녁을 먹고 곧장 자는 나쁜 상황이 되고
(소화가 안되어 위에 부담도 주고 혈당수치도 높아진다.)
계속 이렇게 가자니 졸면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좋아하는 먹거리가 다른 것보다
(나는 고기파, 남편은 나물과 생선파)
그래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신경 쓰이는 것보다 나는
그 일에 소요되는 총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개수대와 조리대 앞에 있는 시간이 너무도 오래이다.
아픈 사람이니 맞춰주자는 생각이 있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인데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어제서야 1년이 꼬박 지나서야 저녁 식사 시간을 19시로 앞당기자는 선물을 받았다.
야호. 한 시간이나 벌었다.
아마 하루 중 식사 준비부터 정리까지 관련 시간은 못해도 2시간은 소요되지 싶다. 나에게는.
한 시간 반으로 줄여봐야겠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야금야금 먹다가
정작 밥 먹을 시간에는 배가 불러서 제대로 못먹는
나의 이런 무수리 형태의 식사는 어려서부터였다. 고쳐야지 하는데 잘 안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배가 고파서 맛없는 것을 집어먹어 기분나쁘게 배가 부르면
꼭 맛난 것이 나타나는 불운도 함께 했다.
학교에서도 그랬다.
수업을 해야하니 배를 채우기 위해서 꾸역꾸역
어제 남은 떡을 데워서 먹었는데
그러고나면 맛난 도너츠가 생기는 그런 일 말이다.
엄마가 그렇게 먹으면 부자가 못된다고 질색하셨는데 우리 엄마는 신기가 있으셨던 것일까?
부자는 못된 것이 100프로 맞으니 말이다.
이제 먹거리에 대한 집착을 조금 버리고
먹거리 만드는 것에 투여하는 시간도 조금 줄이고
엥겔지수도 조금 낮춰보려고 노력하고
대형마트에서의 먹거리 배송도 주 1회로 줄이도록 다짐한다만
왜 배송을 시키고 나면 꼭 빠진 것이 생각나는 것이냐?
메모하고 장을 보는 그 습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새해가 될때마다 가계부작성을 했다만 작심삼일되곤 했다.)
왜 나는 아직도 나의 다 사그라져가는 총기만 믿는 것이냐?
오늘 새벽.
처음 받은 연구비를 연구원들에게 송금한 결과를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 꿈속에서 생각나서
아침부터 국세청을 들어가서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일단 연구팀원들의 주민등록번호부터 받아야한다.
그리고 기타 일거리를 해치우는 중이다.
이러니 7시쯤이면 배가 고파서 또 야금야금 먹는 일을 시도할 듯 하다.
소소한 습관이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어제 저녁 두 번째 시도에서 구름속에 숨었다 나왔다 밀당을 하는 올해 첫 보름달을 만났다.
내가 어디쯤 달이 있을지를 명확하게 알고 나갔으니
본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달을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진도 재빨리 여러장 찍었는데 그나마 달의 음영도 제법 보인다. 스마트폰 최고.
전날 그 시간쯤의 달은 보라색과 하늘색 배경이었는데 어제 보름달은 완전 수묵화 느낌이다.
재빨리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이런 적도 드물다. 보름달의 힘을 빌어야 할 정도의 간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