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시감

추억과 추위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번 주 수요일 오후.

나는 부가가치세 문제 해결을 위하여 세종시 세무서로

막내 동생은 제부와 함께 이런 저런 일을 보러

부산 모처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운전 중 지나가다가 연기군이라는

지명과 안내 표지판을 보고 엄마를 떠올렸고.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연기군과 관련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엄마는 대전 출신이고

외할아버지는 공주와 부여 근처에서 사셨으니

지금 내가 사는 이 공간들이 외갓집 삶의 터전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인 셈이다.

연기군에 대한 에피소드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엄마에게 들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낯설지 않을리가 없다.

막내동생은 부산 어딘가를 지나가다가 못골이라는 지명을 보았다한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이고

매년 구정 다음날이면 우리 집에 모여서 하루 종일 안방에서 먹고 놀이를 함께 하시던

(자욱한 담배연기도 기억이 또렷하다.

물론 지금은 다들 고인이 되셨을 것이다만.)

아버지 친한 친구분들이 만든 모임의 이름이 못골회였음을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아마 동생이 지나간 그 부근 어디쯤엔가 아버지의

유년 시절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필 같은 날.

나랑 동생이 엄마와 아버지의 추억 속 장소를 지나고 있었으니

우연치고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부모님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유일한 공동경험자이다.


이틀 전부터 새벽에 일어날 때쯤 콧물을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내 성능 안좋은 코가 추위에 또 반응을 하기 시작하나보다.

이유는 알 것도 같다.

이틀 전부터 날이 꽤 추운데 산책을 했던거다.

하루는 남편과, 어제는 전통시장에서 집까지

다시 세차장까지 말이다.

부실한 발가락도 반응을 해서 어젯밤 발가락에 쥐가 나려는 순간.

재빨리 마그네슘을 먹고 더 큰 참사를 막았다.

코와 귀와 발가락이 가장 추위에 민감하다는 것을 이미 초등학교때 깨달았건만 종종 잊고 지낸다.

그 추웠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

(당시 이름은 국민학교이다.)

등하교길에 코와 귀는 빨갛게 변하고(조금 있으면 간지럽고 따갑게 된다. 동상의 초기 증상이다.)

콧물은 늘상 흘러서 손수건을 매달고 다녔으며(그때는 이름표와 손수건이 세트였다.)

교실에서도 발가락이 너무 시렵고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양말을 두 개씩 신고 다녔었다만)

집에 오자마자 안방 아랫목으로 돌진하고는 했지만

어느 날은 연탄불이 꺼진 날도 가끔 있었고(그런 날은 엄마가 무지 미워졌다. 연탄불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은 한참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그 아랫목에서 나랑 일곱살 터울의

막내 동생이 자고 있는 날도 있었더랬다.(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밀어낸 적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콧물을 휴지로 닦으면서 이불속에서 시간을 꽤 보내면서(핸드폰을 뒤적이면서 말이다.)

내 코를 정비하고 일어났다.

이렇게 아침에 코를 다스리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지는데(엄마가 알려준 비법이다.)

시간이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추운 밖으로 나간다던지

아침에 머리를 감고 오래지 않아 집을 나선다던지 하면

영낙없이 심한 콧물 단계로 진입하곤 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콧물에 눈물까지 정신이 없는 상태가 된다.

질병도 지금까지의 경험이 바탕이 된 묘한 기시감이 있어서 조짐이 보이면 아이코야 하게 된다.


가끔씩 드는 다양한 기시감이

삶을 조심하게도 만들고

더 큰 무언가에 대비하게도 해주고

누군가를 추억하게도

무언가를 기억나게도 만들어준다.

예감이나 신의 계시랑은 또다른 차원이다.

오늘 아침은 따뜻한 눌은밥 정식이 맞을 듯하다.

어제 전통시장에서 사온 반찬 맛도 볼 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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