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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31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퇴근 후 이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젊은 선생님 몇몇이 학교로 찾아왔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인사차 왔다면서 이제는 자기들도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면서 웃었다.

이쁜 꽃 한다발을 가져다주어서 오늘 큰 비커에 무심한 듯 꽂아서 교무실 중앙 탁자에 올려두었다.

꽃의 향기와 이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기도 하고

우리 집에는 꽃 냄새에 민감한 고양이 설이가 있기도 해서 안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과 추억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했던 그 시절이 많이도 즐거웠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일은 폭탄 수준이었지만)

또 그 때 그 시절의 학생들이 진학도 하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뿌듯하기도 했다.(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테지만)

5월이 되면 졸업생들도 오고 이곳 저곳 제자나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5월은 그런 달이다. 이것도 올해까지 보게 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늘은 2학년 단원 수행평가일이었다.

원소기호, 이온식, 분자식 외우기와(여러차례 반복했다.)

원자, 분자, 이온 모형도(그리기와 만들기 등으로) 연습을 몇 번 했으니 걱정을 별로 안했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변형에 취약했다.(항상 나의 상상 그 이상이 된다.)

이번에는 색종이로 모형 만들기를 하는 것으로 형태만 변형하여 평가를 보았더니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별로 만들기나 그리기를 했었다가 개인별로 색종이로 나타내기를 하니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싶었다.

조별로 같이 하는 활동은 장단점이 있다.

옆 친구가 해놓은 것을 보고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다.(엄마가 음식하는것을 봤다고 내가 그 음식을 혼자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지않은것보다는 훨씬 낫다.)

옆에서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내가 그것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서로 의견을 모아서 집단 지성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습득하는 것은 장점이나

그 과정을 보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모두가 이해하고 알게 된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조별 활동이 끝난 후 꼭 개인적으로 그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과학 수업에서 실험은 함께 하나 실험보고서는 꼭 개인별로 작성하게 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같은 원소는 같은 색깔의 색종이를 사용해야 하고 같은 크기, 같은 모양으로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수소가 원자 모형에서는 노란색이었다가, 물분자로 가면 빨간색이 되고, 수소이온이 되면 초록색이 될 수는 없다.

이 간단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녀석들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물론 이온식과 분자식을 못외운 녀석들도 많다.

외웠다가 잊어버렸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외우지 못한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나는 단원이 끝나면 책검사를 한다.

수업 시간마다 책에 꼼꼼이 메모를 하고 문제마다 정답을 적어놓는 성의를 보이는 학생들에게

소정의 부활(?)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의 부활이 있을 수는 없다. 단원별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실수는 한 번이어야지 여러 번이 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실력인게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성적 향상은 시작된다.

이렇게 적고 나니 나는 지극히 T인 과학 전공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성적 부여에 있어서는 T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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