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41
식사 같이 하기
연휴동안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빠트렸다.
1,000원 주고 재래 시장에서 산 도토리묵에 야채를 듬뿍 넣어 버무린 도토리묵야채무침이다.
나의 음식 양념은 그것이 그것이다. 아마도 다른 집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골뱅이 무침이나 도토리묵야채무침이나 양념으로 들어가는 것은 비슷하다.
그런데 맛나게 되는 날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손맛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비닐장갑을 끼고 무치니 손맛은 아닐듯 하다.
아마도 양념의 비율이 잘 맞아들어간 날일게다.
누군가는 계량컵을 사용하여 화학 실험처럼 양을 맞추기도 하지만 나는 대략 눈어림으로 한다.
사실 어림이라는 것은 과학에서도 사용하는 기법이기는 하지만
매번 계량컵을 사용하기에는 번거롭기도 하고 그 정도로 정밀한 요리를 추구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들이 꼽은 5월 연휴 최고의 음식은 도토리묵야채무침이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남편은 음식 맛에 까다롭지 않다. 맛을 잘 모른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오늘 점심은 학생 인솔 행사 후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유명 평양냉면집에 갔다.(5월은 행사가 많다. 테마체험, 진로, 체육대회 등)
함흥냉면의 맛에 익숙할 것 같은 젊은 선생님들이 추천한 식당이다.
직원 추천을 받아 물냉면, 수육, 제육을 시켰다.
양념 무와 백김치가 기본 반찬으로 제공되는데
이 식당만의 특별한 양념장과 이 반찬 두 가지가 심심한 평양냉면의 맛에 감칠맛을 얹어주는 듯 했다.
이제 냉면의 계절이 오고 있다.
학교가 위치한 중구 일대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냉면집들이 많이 있다.
올해 안에 모두 한번쯤은 먹어보는 도장깨기를 하는 것이 목표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냉면은 혼밥하기에는 힘든 메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냉면의 면발을 끊고 국물을 들이키기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존재한다.
벽을 보고 앉아서 혼자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혼밥의 대가이다.
편하지 않은 관계(소개팅 날이라던가, 썸 타는 관계라던가)에서도 함께 먹기 힘든 음식이기도 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이빨을 드러내면서 면치기도 힘들고 면끊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냉면을 같이 먹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그 사람과 편한 사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면 그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관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