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만년만의 뒷동산 오르기

걷는 것이 절실한 이유를 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일주일에 한번쯤은 남편과 산책을 해주기로

나혼자 암묵적으로 결정을 했었고

이사오기전에는 근처 어린이대공원을 주로 걸었었고

이사와서는 저수지 주변의 시골길을 걷는다.

다른 점은 어린이대공원은 데크가 잘 되어 있는 평지라는 점이고

저수지 주변은 딱 그 주변만 데크이고

사방 팔방 작은 동산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다.

남편은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점심 산책을 하니

나보다는 당연히 이 주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매일 산책을 나가는 이유는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다리 근력 유지를 위한 운동이 목적임을

잘 알고 있다.

아프기 이전에는 산책이라고는 하지 않던 사람이다.

물론 등산은 좋아라 했었다만.

농구랑 마라톤을 뛰던 사람이다.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엄마도

파킨슨 진단을 받은 후 셋째 동생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동 파리공원으로 운동을 나갔었다.

가끔 그 산책에 동행했을때 느낌으로는

오늘 하루 운동을 안하면 내일부터 당장 못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이 있는 듯 했다.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나도 남편이 집을 날려먹고 살고싶은 의욕이 1도 없었을때나

갑상선암 수술후 내 몸이 내 맘 같지 않았을때

마냥 걷기만 했었더랬다.

그것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작년 1월 남편이 집에서 항암 치료차 회사를 안가고 재택을 하주로 집에 머무르면서 남편도 그랬다.

그때는 사실 넘어질까봐 함께 산책을 나섰었다.

그 정도로 다리에 힘이 없고 발가락의 감각이 떨어졌었다.

운동화도 혼자 못 신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치매 엄마나 파킨슨 동생과 같이 산책할 때 느꼈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휘청이는 다리가 똑 같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다리 근육에 힘이 생긴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나 보다 더 빠르게 힘있게 걷는 듯 하다. 다행이다.

그 컨디션을 확인해보고자 나는 일주일에 한번쯤은 남편과의 산책에 나선다.

물론 그것때문이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오늘은 저수지 근처를 돌다가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에 올라가자 한다.

자기는 몇 번 올라갔었다면서.

꽤 경사가 있어보이는데

그리고 나는 오르막길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러자고 했다.

무언가 자신 있는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겠거니하고 말이다.

헥헥거리면서 올라간 산 꼭대기에는 헬스 기구가 놓여있다. 말로만 듣던 산스장인 모양이다.

그 중에서 누워서 한바퀴 도는 그 이름 모를 기구를 한번 했다가 휴대폰이 떨어진 것을 모르고 그냥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서 찾았다는 이야기를 자랑인듯 한다.

[아이고야. 그게 자랑이냐. 가뜩이나 손과 발의 감각이 떨어져서 휴대폰을 넣었는지 아닌지도 잘 구별 못하면서 말이다. 휴대폰을 떨구었는데 그걸 못느껴서 잠시 잊어버린 것만 벌써 세번째쯤 된다.]

어쩐지 산책 시간이 길었던 날이 있었는데 그래서였구만 싶다.


그런데 오르막길보다 더 조심해야하는 내리막길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돌멩이를 치운다고 비틀거리고

내 걱정을 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보고

미끄러우면 옆으로 내려오라는 잔소리를 해댄다.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것이냐? 각자도생의 나이이다. 당신이 제일 싫어하는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각자 조심조심 잘하면 된다.]

[ ] 표 안에 쓰인 말은 마음속의 말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본인이 괜찮다는 것을 나아졌다는 것을

나에게도 본인도 끊임없이 확인받고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이미 먼저 많이 아파본 내가 모를 리가 있겠냐.

그러니 백 만년 만에 뒷동산을 함께 올라준 것이다.

나 오르막길 겁나 싫어한다.

높이가 낮은 동산이었지만

오르막길, 내리막길은 분명하고

지금은 겨울철이고(그래도 오늘은 얼어있는 길은 아니었다. 그러니 도전한 것이다.)

평지 걷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나보다. 온몸이 나른하다.

겨울철 산행은 잘해야 본전이다.

저녁 먹으면서 산은 꽃피는 봄에나 가자고 좋게 이야기해봐야겠다. 들으려나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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