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출발이 좋다.
아침 나는 약을 먹고 설이는 츄르를 먹고
나는 브런치를 쓰고
나의 고양이 설이는 작은 책상 그 옆에서 식빵자세를 하고 있고
그 사이에 유튜브 음악 모음이 공간을 메꾼다.
물론 남편이 깨지 않게 제일 낮은 볼륨이다만
남편은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못 듣는다.
귀를 엄청 파서 염증이 생겨서 청력이 떨어진거다.
청력만 떨어진게 아니고 그 균이 뇌로도 가서 죽을뻔했다하니
(나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한참 지나서 알았다. 바빠서 집에 못온다고 했던 그 시기였다.)
도대체 어느 시대 일이냐?
내가 첫 올타임 담임을 맞았던 1986년에
(1985년 발령이다만 그 해는 2학기만 담임이었다.)
우리반 녀석이 남편과 똑같은 증상으로 뇌막염이 되어 죽었었다.
그 아이는 귀를 판 것이 아니고 귀에 염증이 생긴 것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였다.
그때는 다들 가난해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만
남편은 주구장창 귀를 파서였다.
결혼했더니 이미 귀파기 중독이었었다.
나보고도 파달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몇 번은 신나서 파주었다만
(탐험과 발굴의 묘한 묘미가 있다.)
얼마 지나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해주지 않았는데 본인이 그렇게 주구장창 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하루를 부드럽게 여는 감성 음악이
옆 방에서 자고 있는 그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날 그날따라 틀어놓는 음악의 종류는 다르다만
가요는 듣지 않는다. 아침에는.
가요를 들으면 가사가 너무 쏙쏙 들어와서
아침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힘이 나는 가요만 골라서 듣다가는
아침부터 에너지 사용량이 마구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위험 요소가 조금은 있다.
그냥 모닝 카페 음악 모음을 주로 틀어놓는다.
클래식일때도 재즈일때도 팝송일때도 영화 OST 일때도
그때 그때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에 내 손가락을 맡긴다.
가급적 광고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다가 말이다.
카페에 들어가거나 어느 공간에 들어섰을 때
심지어 택시를 탔을때조차도
내가 좋아라했던 음악이 들리면 순간 무장해제가 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시절로 순간 회귀가 되는 신기한 체험을 가져다 주는 것이 음악의 힘이기도 하다.
가끔씩은 그 정도가 넘어서는 감정을 느낄때도 있다만.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One Summer Night을 들었을때는 울컥했었다.
딱히 그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만
그때 그 시절이 엄청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순간 훅 올라왔다.
고양이 설이 귀에는 노래가 들리는지 알 수는 없다만
노래 소리에 맞추어 그르렁 대기도 코를 약하게 골기도 한다.
두 소리가 협주 수준이다.
제주도에서 제자들과 딱 한번 가본 LP 바와
파주에서 지인들과 딱 한번 가본 음악감상실에서의 느낌을
매일 아침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튜브가 있어서 가능하다.
이렇게 나는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은퇴후 유튜브 중독자의 길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
(새벽에 눈이 왔나보다. 안전 문자가 들어오고 있다. 오늘부터 다시 추워진다더라. 그렇다.
이 겨울이 추위가 이리 쉽게 호락호락 물러갈 리가 없다.
대문 사진을 고르다가 눈에 띈 호텔 카페 케잌이다.
음악이던지 음식이던지 부드러운 것을 선호한다. 한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나 호캉스가 고픈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