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달과 시장의 두 젊은이
서울이었다면 당장 어디론가 나갔을 것이다.
아무리 춥다고 하더래도 말이다.
서울은 실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많다.
고터에 가서 많은 사람에 치여서 밀려가면서라도 이쁜 옷들을 보거나
삼성역에 가서 도서관인데 사진 찍는 사람이 더 많은 그곳에서 책을 읽는 흉내를 내거나
여하튼 어디론가 당장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갈 곳이 없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주변을 돌다가
들어올 수는 없다.
감기만 걸릴 것이 뻔하다.
그러면 더더욱 분하다.
일단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매일 매일 쓰레기는 왜 이다지도 많이 나오는 것이냐?
깜빡 까먹고 못먹은 불고기도 남편에게 선택을 못받은 참치 김치찌개도 과감히 버린다.
냉장고에 있었어도 1주일 정도 지나면 특유의 오래된 쿰쿰한 음식 냄새가 난다.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분리수거도 하고 났는데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는 싫은거다.
조금 걷다 들어갈까 싶어서 몇 발자욱을 떼고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이쁜 반달이 눈에 들어온다.
고맙다. 나를 위로하러 니가 그리 일찍 나와주었구나.
하늘은 맑고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반달이 걸려있다.
그리고는 2분 뒤 도착하는 버스에 아무 생각 없이 올라탔다.
가봤자 어디를 가겠나. 조치원역과 전통시장밖에 아는 곳이 없다.
오일장때 한번 들러본 전통시장 반찬집이나 들러보자 생각했다.
오일장 날보다는 사람은 적으나 그래서 구경하기에는 더 안정적이었고
그날 못봤던 골목 골목을 들러보는 여유를 만끽했다.
딱히 사고 싶은 것은 없었는데 시금치를 살까말까는 잠시 고민했다만
양이 꽤 많아서 시금치국과 나물을 동시에 해도 남을 듯했다.
집에 고추장감자찌개를 이미 준비해놓고 왔다.
그리고는 용케 지난번 밑반찬을 구입했던 가게를 찾았고(내가 이렇게 눈썰미가 좋을리가 없는데)
많고 많은 반찬 중 네 개 만원어치 반찬을 고심 끝에 선택했다.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은 굴이 들어있는 김치속이었는데 배가 아플것 같고 남편이 먹기에는 매워서 포기했다.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종류를 선택했다.
양도 딱 한번 혹은 두 번이면 다 먹을 정도로 적당하다.
지난번에도 느꼈다만 젊은 남녀가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는 가게인 듯 싶었다.
젊은 남녀는 부부일수도 형제일수도 있겠는데
추운날 조치원의 전통 시장에서 그리 신나게 열심히 반찬을 챙기고 장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던 지하철에서의 지치고 찌든 얼굴의 젊은이 모습이 아니다.
이쁘다. 무엇이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은 이쁘다.
내 심신이 힘들 때 시장 한바퀴를 도는 일은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나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마감하고 있는 모습이 마냥 이쁘고 위로와 위안을 준다.
그리고는 한 정거장을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아무 곳도 나갔다오지 않은 것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연속 잠을 잘 못잤다는 남편은 자는지 방에서 꼼짝도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SNS에서 명언이 적힌 자료가 또 눈에 띈다.
생각이 많으면 글을 쓰고
실망했으면 운동을 하고
심심하면 독서를 하고
우울하면 자신을 사랑해주고
모든게 막히면 산책을 하고
허전하면 무언가 체험을 시도하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초조하면 몸을 움직이며
궁금하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외로우면 사람을 만나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하소연하고
짜증이 나면 하루 일을 되돌아보라 써있다.
세상에나 심플하기도 하다.
나는 이미 글도 썼고 운동도 독서도 했고 산책도 했고 톡으로 하소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모두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바로 맛난거 먹기와 돈쓰기다.
순전히 내 기준이다. 나를 위로하는 방법.
비록 다음날은 후회할지 몰라도 약효는 이것만한 것이 없다.
오늘은 하늘의 달과 반찬집 열심히 일하던 젊은이들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만원어치 반찬도 저녁 준비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었으니 특별한 위로가 된 셈이다.
이쯤이면 우울감과 외로움과 짜증과 허전한 마음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게다.
후쿠오카에 간 아들 녀석은 카톡 답은 없으나
내 카톡을 읽은 것으로 보아 무사 도착한 듯 싶다.
(시래기볶음과 냉이무침나물이 맛났다.
역시 맛난 음식이 나를 위로하는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