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라고 읽는다.
친절한 엄마, 아내는 애시당초 틀렸다.
친구같은 엄마와 아내도 틀려먹었다.
이번 생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폭망 수준이다.
그런데 친절한 선생님은 조금 가망성이 있어보이기는 한다.
물론 말투나 얼굴이나 이런 것들은 빼고 말이다.
담임을 할 때 세세한 안내를 지속적으로 했다.
누구는 잔소리라고 싫어한다만
내가 하는 열 번의 이야기 중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들으면
사고도 미연에 방지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치 않겠지 하고 말이다.
여러번 말하는 내가 더 힘들긴하다만
그래도 의무감에 사명감에 이야기하고
여러번 중복 체크를 했다.
그래서 시험 감독 하면서 빠트린 표기한 것도 찾아내고
수능 감독에서 잊어버린 물품도 찾아주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다양한 학교 행사에 참여하게도 해주고
그것을 발판으로 대회에 나가 수상권에 입상하는 기회도 종종 만들어줬다.
그런데 아들이나 남편은 나의 이런 반복적인 이야기를 직업병이라고 하면서 싫어라한다.
애정이 없으면 잔소리도 없는 법이다.
아무리 내가 태생적 오지라퍼라 해도 말이다.
지난 학기 강의가 끝나고 받은 서술형 평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출결 처리에 엄격하지 않다.>
다른 내용은 다 긍정적인 내용이었는데 이것만 소위 불평불만이었던 셈이었다.
출결 처리는 학점에 자동으로 반영되고 출석 처리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지만 지각생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지각의 정도는 작게는 몇 분에서 크게는 한 시간 정도까지 범위도 매우 다양하고 사유는 물론 더 다양하다.
대학생쯤 되었으면 특히 졸업 학년의 경우에는
교양 과목 하나 출결이 빵꾸나서 졸업을 유예하게 되면
자신의 진로에 있어서 커다란 마이너스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을텐데도 문제는 항상 발생한다.
어제 교강사 워크숍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봤더니
다른 분들이 노하우를 알려주셨는데
첫 시간에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지각의 빈도가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이번 학기에는 나도 조금은 불친절하게 변모해야할 필요성이 있겠다 싶다.
친절하게 여러번 안내하는 과정도 조금은 생략할까 싶다.
듣는 사람만 들으니 그들에게는 과한 잔소리가 되고
안듣는 사람은 여전히 모르니 개별로 질문하러 올때까지 참아볼까보다.
그러면 또 불친절하다고 안내를 잘 안해준다고 불만이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만.
그런데 어제 교강사 워크숍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출석을 잘 하다가 평가 시험을 보러 오지 않은 학생이 다른 강의에서도 있다는 점과
이미 결석이 많아서 F가 확정인데 시험을 보려고 나타난 학생도 다른 강의에서도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 강의에서만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 줄 알고 놀랐었다.
도저히 그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오늘 단톡에 교양교육원 원장님이 올려주신 그림이 오늘의 대문 사진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기다리지말고
내가 나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이 최고라는 뜻을
내포한 명언이다.
나는 나에게 친절한 편도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절이라고 쓰고
애정과 의미는 같지만 다른 표현의 용어라고 해석한다.
애정이 없다면 결코 친절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험치에서는 그렇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람은 친절한 것이 아니라 가식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친절한 사람인가?
나에게 친절함을 베풀어주고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다.
(남편은 2주에 걸쳐 네번째 톳을 사오고 있다.
이 추위에 또 운동한다고 산책을 갔다 오면서 말이다.
내가 말하는건 잔소리라 할텐데
나는 이렇게 같은 먹거리를 자주 먹는거 질색이다.
몇번을 말해줘야 알아듣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