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시간만 남았다.
오늘 날씨는 입춘이라는 용어에 딱 들어맞았다.
진짜 봄이 왔다해도 믿을만한 날씨였다.
바람이 물론 따스하다던가 살랑살랑 꽃내음이라던가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만.
점심으로 애호박과 무나물을 주로 하는 비빔밥을 먹고는
남편과 운동 겸 산책에 나섰다.
이번 주 들어서 만보 정도 걷기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원래는 갈 때만 걸어가고 올 때는 버스를 타려했는데
올 때도 걸었더니 만보가 넘었고
집 도착 5분전부터는 다리가 슬슬 힘들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럴 것이다. 오랜만에 걸었으니.
따라서 오늘은 골프 연습을 패스한다.
내일도 꽤 걸을 예정이다. 서울에서. 그건 신난다.
조치원역 한 블럭 옆에 조치원 전통시장이 있고
오늘이 마침 오일장에 해당하는 날이다.
역과 시장 사이에는 병원들이 모여있다.
나는 그곳을 이미 지나다녔고
그래서 남편이 치료받으러 가는 치과가 그 어디쯤 있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남편은 영 다른 위치의 병원을 예약했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니 그 병원만 나왔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려다 입을 꼭 다물었다.
오늘은 화를 내면 안되는 입춘날이다.
디지털기기 활용 검색 능력의 차이가 가져다준 불편함인데
(이쪽 병원을 다녔으면 훨씬 가깝고 편한 위치인데)
다행이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고 설명을 잘해준다하니(남편은 그 친절에 민감하다.)
되었다 싶어서 두말하지 않았다.
괜히 이야기했다가 자신의 정보검색 능력에 빈정만 상할 것이고
(이미 이곳의 큰 치과 간판들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어차피 임플란트는 시작되었고 이제 바꿀 수도 없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많은 시장안의 사람들을 봤다.
아마도 조치원에 내려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듯 하다.
세 번째 방문하는 반찬가게에 가서 이제야 상호명도 확인하고
남편보러 먹고싶은 반찬을 고르라했더니
단단한 콩자반, 멸치볶음 이딴 것만 고른다.
이빨 치료 중인 사람 맞나 모르겠다.
힘들어서인지 입술도 물집이 생겨서 부어오르고
어제는 하품하다 찢어져서 피도 났다면서 말이다. 생전처음이란다. 세상에나.
입술이 부르트고 부어오르고 딱딱하게 딱지가 앉고
또 찢어져 피가나고 진물이 나고
이런 일을 엄청 많이 해본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시적에 많이 아파본 나는 이런 저런 아픔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데
평소 건강을 자신했던 남편은 1년여 전부터 놀라운 날들의 연속인 셈이다.
아픈것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일까?
많이 아팠던 경험들이 보탬이 될 때도 있는 웃픈 현실이다.
내가 싫어하는 <골골한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을 남편이 또 하였지만
못들은 척 넘어가 준다.
오래사는게 중요한 게 아니다.
건강하게 사는게 중요한 것이지.
답답한 사람아.
그리고는 혈당을 조심해야한다는 사람이 자꾸 떡집에서 시선을 멈춘다.
인절미 하나만 사서 먹으면 안될까한다.
시아버님이 인절미를 좋아라하긴 하셨었다만
집에도 배달한 떡들이 두 종류나 냉동실에 있는데 또 끌리나보다.
알단 체중을 늘리고 많이 먹는데 중요하니 선심 쓰듯이 인절미와 검은깨떡 반반씩 섞은 것을 하나 샀는데
아뿔싸. 내가 내일과 모레 공식행사를 위해서
머리 드라이를 하고 왔더니 벌써 그 떡의 반을 뚝딱 먹었더라.
어쩐지. 산책도 다녀왔는데 실내자전거를 타고 있더라니.
그래가지고서야 혈당 관리가 되겠나 싶은데 잔소리 입을 다문다.
이미 먹었는데 어쩔것이냐.
이제 저녁 식사 시간 한 고비만 넘기면 화를 안내고 입춘을 마무리할 수 있다.
고양이 설이는 새로 도착한 신상 의자를 탐하고 있고
(괜찮다. 패브릭도 아니고 가죽도 아닌 싼 것이다. 실컷 니가 사용해라.)
나는 반건조 생선 중 한 가지를 구워서 아까 남편이 골라온 밑반찬들과 저녁을 차리면 되겠다.
그래도 오늘 두 강의 1차시분은 대략 머리 정리를 했으니
아무것도 안한 날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내일과 모레는 열심히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아직도 잘나가는 여성 직장인 같은 삶을 표방해보자꾸나.
(조치원시장에서 돌아오다가 실개천에서 우아하게 거닐고 있는 저 새를 찍었다. 멋지더라.
보폭이며 날개며 꼿꼿이 세운 기다란 목과 부리며.
그런데 아직은 조금 추워보였다.
입춘이라고 해서 봄인 것은 아니다.
봄인가 싶은 이런 날씨에 혹해서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