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밤의 꿈

잠깐이었어도 반가웠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가끔 일년에 한번 정도 내 꿈에 나타나는 게스트들이 있다.

대학 때 친하게 놀았던 친구들이다.

아마 그들의 꿈에는 내가 나타나지는 않을텐데

(아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그들을 훨씬 많이 좋아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는 그 사실이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었는데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것이 사실 뭐 그리 섭섭한 일도 아니라는 것은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다.

그 친구들이 어제 아니다 오늘 새벽에 꿈에

그것도 단체로 등장했으니 오늘은 운수대통일려나 모르겠다.


동시대에 세상을 산다는 것은 비슷한 사건들을 함께 만나게 된다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은 80년대 격동의 그 시대를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함께 보냈던 그들이다.

신촌, 종로 거리를 걸어다닐 때도

무더기로 뭉쳐 다닐 수도 없었던 시기였다.

길가에 군인과 경찰들이 줄을 서서 젊은이들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카더라 통신으로 돌아다니는 각종 이상한 이야기 속에서도

모두들 학업에만 지나치게 열중하는 모범생들이었다.

다행히 정치적인 성향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해서

싸울 일도 언성을 높일 일도 전혀없었고

술을 왕창 먹는 사람도 술먹고 꼬장을 피거나 주사를 부리는 사람도 없는

그 시대 유행인 고교야구를 함께 보러다니던

(야구 명문고 출신이었다.)

건전성 100프로의 모임이었다.

그렇게 모이기도 참 힘든데 말이다.


그런 성향이 반영되어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 못봤지만 미국에 있는 세 명의 친구도 그럴 것이다.

사람 다 생긴대로 사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오늘 새벽 그 친구들이 몽땅 내 꿈에 등장해주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 주제는 모르겠는데

축하할 일이 생겼다는 듯 모두가 밝은 얼굴로

멋진 식당에 모여서 맛난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옛날로 돌아가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얼굴도 다 젊었을때의 얼굴이다.

다행이다.

꿈에서라도 나쁜 일로 모인게 아니었고

쭈글쭈글해진 얼굴로 알아보지도 못하게 만난 것이 아니어서 말이다.

20대를 함께 보냈는데 60대가 되어서 만나면

쓸쓸한 일밖에 뭐가 더 있겠나 싶은데

꿈에서 만나니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어 좋았다.

조금 더 꿈을 꾸고 싶었지만 고양이 설이가 나를

더 자게 꿈속에 있게 놓아두지 않았다.


그 중에 나랑 페친은 딱 한명이다.

물론 카톡은 있다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일상을 서로 자주 나누지는 않는다.

꿈에서 봤으니 생각난 김에 페친인 그 친구의 페이스북을 방문해본다. 오랜만에.

방학이라 어디를 부지런히 다니는 듯 했다.

아니. 그 모임 중 가장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던 녀석인데 이렇게 어디를 바삐 다닌다고?

이렇게 감상적이라고? 공대인데.

그들이 내 SNS를 봐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만.

대부분 어디 어디를 방문한 사진만 있으니 말이다.

SNS에서라도 흔적을 찾아보니 기쁘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아마도 SNS를 하지 않을 성향이 분명하다.

20대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약간은 무미건조한 전형적인 이과생 성향들이다.

나만 조금 특이했던게 맞다.

그래도 나의 20대를 함께 해주었고

가끔은 꿈에 나타나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모두 건강하자.

언젠가 한번쯤은 모두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란다만

그 날이 그 장소가 누군가의 장례식장은 아니기를 바란다.

그건 너무 슬플 것 같다.

아들 녀석 결혼식에 모두 다 초대하고 싶은데

아들 녀석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

그것도 슬프다.

아직 다친 내 발과 마음의 재활이 채 끝나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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