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찾기로 했다.

운명이 아닌 것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번 학기 강의 강좌수가 2개 줄어서

월, 화만 나가면 되는지라

하루쯤 더 강의할 곳이 없나아보고 있었다.

내년까지만 공식적으로 강의가 가능하니

그때까지는 나의 열정을 불살라보겠다는 의지와

너무 심심하다못해 바보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생각이었다.

조치원 근처에서 강의가 하나 더 잡히면 조치원을 주 근거지로

서울 근처에서 하나 더 잡히면 서울을 주 근거지로

학기중에는 그리 살면 되겠다 생각했고

그것은 운명처럼 결정될 것이라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열심히 찾은 두 종류의 메이저 일은 모두 면접만 보고 탈락해버렸다.

오늘 오전 지난 주 금요일 면접의 탈락을 확인하고는

화도 나고 기운도 빠지고 기분도 나빠져서

점심 브런치글도 안쓰고(못쓴거다.)

발 부상 정도 체크도 할 겸 커뮤니티센터 골프 연습장에 갔다.

골프공이라도 후려패고 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물론 내게 딱 맞는 강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면접에 갔지만 말이다.

사람 마음이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다행히 발은 주저앉거나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내려올때만 조금 불편함이 있고

(아픈 것보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아직은 더 크다.)

이제 이 스크린 골프의 시스템도 파악하였고

(삼 세 번이니 되더라. 지난번 두 번 연습한 그 타석이 고장난 것이었다. 어쩐지 사람이 없다했다.)

석달 정도 연습을 안했으니 게임 모드에서는 모두

더블 보기 이상의 스코어가 나온다.

발이 아플까봐 몸은 못 돌리고 팔로만 하는 스윙이니 당연하고

제주 멋지고 어려운 코스를 선택하기도 했다.

공은 못쳐도 코스는 좋아야 한다.

내가 그렇다.

그렇게 뽀대 나는 것을 좋아라 한다.

한마디로 실속이 없다.


그런데 공을 들입다 후려패고 있는 중에

어제 후배 과학교사들에게 탄소중립 연구 결과 공문을 카톡으로 뿌렸었는데(학교마다 잘 실천해달라는 뜻에서 말이다.)

그 중 후배가 톡을 보내온다.

하루를 자기 학교에 나와 시간강사 해주시면 안되냐고.

본인이 고등학교 교무부장인데

(안다. 현재 교육과정에서 고교 교무부장은 기피 1순위이다.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

그래서 수업시수 경감 차원에서 학교에서 시간강사를 써준다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면서 말이다.

고1 통합과학 6시간이고 자기 살려주는셈 치고 도와주시면 안되겠냐고.

좋은 사람 찾아주겠다고 일단 그 내용을 사방에 포워딩했는데

사실 그 조건에 사람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한명 지원자가 있었는데 경력이 달랑 한 달이라고

안되겠다한다.


고민을 해본다.

일단 대학 강의처럼 뽀대가 나는 것은 아닌데

강사비와 먼곳까지의 교통비 및 소요 시간등으로만 따져보면 사실 그게 그거다.

교육 대상 수준과 내용도 유사한 점이 꽤 있다.

서울에 있을 때 나의 거주지가 될 목동과 그리 멀지 않고 한번에 가는 버스도 있다.

반나절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이 또한 운명인가 싶었다.

평소 이뻐라하는 후배의 난감함을 도와주고

(내가 당해봤으니 아는 난감함이다. 물론 나는 시간강사를 못구해서 내가 그냥 수업을 많이 했다만.)

한번도 강의해보지 못한 고등학교에서의 공식 강의 기회이고

현재 고등학교 과학교육의 어려움을 직접 느껴볼 기회이기도 하고

나를 위해 시간표는 목요일 하루로 몰아준다고 하니 말이다.

딱 한가지 걸리는 것은 고양이 설이를 매일 보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인데

나보다 더 이뻐라해주는 이모가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3주에 한번씩 남편 항암 주간에는 서울에 머물러야만 하니 말이다.


3월부터는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는 두려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양이 설이가 많이 보고 싶어서 때때로 사진을 들여다 볼지도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는지 오늘 오전에 고양이 그림으로

아픈 마음의 상처를 달랬었다.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는 설이를 그린 것인데

털 색이 하얀색이 아니고 꼭 때가 덕지덕지 묻은 색으로 칠해진다.

우리집 고양이 설이는 순백색인데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덜 뚱뚱하고 조금은 귀엽게 그려지지 않았나?

그림 실력도 다친 내 마음처럼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리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힌다.

이제 더 이상 강의할 자리를 찾지 않으련다.

꽉찼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늙은 과학교사의 수업 이야기>는 적어도 올해까지는 유지될 수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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