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주기가 있다.

못 알아차리는 내가 바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남편이 기분이 안 좋아지는 주기가 있다는 것을 또 잠시 잊고 있었다.

내일이 항암주사일인데 말이다.

항암주사일 하루 이틀전에 기분이 가장 다운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만. 발을 다쳐서 병원가기 전날 내 마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때쯤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친다는 것이다.

항암주사를 맞고 오면 안되었고 힘들 것 같아서 봐주는 시스템이 되다가

3주차쯤 되면 하루 세끼 밥하느라 아무리 요리를 좋아하는 나도 힘들고

(외식이라고는 조치원 내려와서 아들이 왔을 때 아구찜 한번 시켜먹은 것이 끝이다.)

매일 이상한 남편의 행동이 하나씩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어제는 전기면도기에 배터리가 나간 건전지를 끼우고는 안된다고 고장났다고 타박이었다.

나는 천사나 현모양처가 절대 아니다.


오늘 아침은 바나나, 사과, 후숙 잘된 아보카도를 잘라두었고

두부구이와 달걀 후라이, 치즈 그리고 버섯 크림 스프에 올리브치아바타 식빵 두 개를 올려두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넣어서 샌드위치 만들어 먹으라 일러두고 말이다.

나는 그 사이에 저녁으로 먹을 두부어묵국을 끓이고

남은 어묵은 김밥용으로 길게 썰어 매콤 양념해서 구워두고

어제 전통시장에서 산 달래 다듬어서 달래장을 만들고 하느라 왔다갔다했더니

아보카도를 홀라당 다 먹고는 달랑 한 조각 남겨두었다.

이 사람이 이렇다. 이 음식을 나도 먹는다는 생각을 안한다.

그리고 본인은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생각하겠다만(소고기빼고 말이다.)

그날 방금한 맛난 것만 홀라당 홀릭하는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랜만에 아보카도를 먹어볼까했는데 빈정이 훅 상한다.

할 수 없이 남은 바나나와 사과, 아보카도 한쪽을 넣어서 갈아서 쥬스로 마셨다.

딱 한쪽 들어간 아보카도 때문인지 달달하니 맛이 좋아서 분노는 조금 가라앉았다.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못먹었으나 쥬스가 맛난 것인지 알았으니 되었다.


그리고는 오늘 회사를 다녀온다 해서

조치원역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언제 집에서 나가면 되냐고 물었더니 10시 40분이라고 답한다.

아직 완전치 않은 발이지만 운전의 주발이기도 하고 운전하면서 발목을 써야는데 괜찮을까 테스트삼아서

모셔다 드린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10시부터 번잡스럽다.

결국 다시 물어봤더니(두번 물어보는 것도 질색하고 싫어한다. 교사 스타일이라나.)

10시 40분 천안행 기차라면서 20분에 나가면 된단다.

아니 나에게 밥먹으면서는 10시 40분에 나간다하더니 말이다.

자기는 기차시간을 이야기한 것인데

니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란다.

내가 분명히 언제 집에서 나가면 되냐고 물었었다.

그 얘기를 하는 순간 본격적인 말다툼이 된다.

얼른 옷을 주워입고 조치원까지의 기사 대기 모드를 장착한다.


다행히 운전하는데 다친 발목이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차 안에서 느닷없이 팔리지 않는

공장 땅 이야기를 자신이 꺼낸다.

나는 입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면서.

부동산 한 곳에만 내어놨는데 이제는 여러곳에 내놔야겠단다.

나는 딱 한마디 했다.

<요새는 부동산 여러곳에 내놓는 것이 대세라고. 온라인으로도 다 올리는 추세라고.>

그랬더니 또 혼자 자기를 바보로 생각하냐면서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여태껏 한 부동산 말만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가 아닌가?

자기도 직방도 다방도 안다면서.

사업 경력 20여년이 넘었다면서 말이다.

아이고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조치원역에 남편을 내려주고 생각해보니

남편이 그러는 이유를 알았다.

내일이 항암주사일이다.

구정이라 일정이 변경되어 내일 오후이다.

아무거나 트집잡아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이다.

내가 눈을 감아야지 환자 상대로 부득 부득 싸워봤자 뭐하겠나.

이러다가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올 판이다.

운전에 발 부상이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엘리베이터에 점검중 표시가 뜬다.

아뿔싸. 집은 18층이고 여기는 지하 2층이다.

어쩌겠나. 살살 운동삼아 올라가야는데 다친 발목이 마음에 걸린다.

1층에서 살펴봐도 역시 점검중이다.

8층까지 올라와서는 혹시 싶어서 다시 엘리베이터로 가본다.

그 사이에 다행히 점검이 끝났나보다. 운행중이다. 다행이다. 8층과 18층은 천지차이이다.


8층에서 18층까지의 짧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득도를 한다.

화내는 것에도 기분 좋은 것에도 행운에도 불행에도 주기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그 주기를 잘 파악해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행운의 주기는 언제 돌아오는거냐? 소소한 것이어도 되는데 말이다.

베란다에 옹기종기 놓아둔 저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날을 기다리는게 더 빠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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