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

이름대로 따라간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고

핸드폰 사용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도

눈에도 목에도 손가락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데

집안에서도 핸드폰을 주로 가지고 다닌다.

받아야할 중요한 전화나 연락도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만약의 사고에 119에 연락을 할 수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화장실에도 들고 가는 이유이다.

너무 오버라고 생각되는가?

집에 혼자있을 때 다치면 그래서 못 움직이면 핸드폰이 꼭 필요하다.

남편이 안방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한쪽 귀가 안 들린다.

아들 녀석이 함께 있었을 때도 그랬다.

자면 소리를 질러도 잘 못 듣더라.

그리고 중요한 건.

심하게 다치게 되면 큰 소리도 지를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응급의학과 교수인 제자 녀석의 말에 의하면

제일 많이 다쳐오는 것은 집이고 그 중에 화장실이란다.

그럴 것 같다.

화장실에서 삐끗해서 미끄러지면 대형 사고이다.

주변에 부딪히면 크게 다칠 것들뿐이고 공간이 좁다.

이번에 내가 방에서 넘어져서 다른 것에 부딪히지 않아서 그나마 이 정도 부상이지

화장실에서라면 머리나 얼굴쪽이 크게 다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화장실에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는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고양이 설이가 내가 오랫동안 안나오면 밖에서 야옹 야옹은 해주겠지만 119 연락은 불가하니 말이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30여년전 어떤 선생님의 무단 결근 사유이다.

출근을 위해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고리가 고장나서 하루 종일 갇혀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고 그 상황이라면

문 두드리는 것 빼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같다만.

다들 그리 믿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그 선생님 남편과는 부부교사였고

어린 자녀들이 있었는데

본인이 가장 나중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고는

아침 출근 시간 정황상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분이 평소에 불성실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믿지않는 눈치였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그런 사유가 발생할리 없다.

친정 아버지도 화장실을 다녀오다 쓰러지시고 외삼촌도 그랬으니

내가 화장실을 가장 무서워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자다가 갈 때와(안갔으면 하는게 소원인데 잘 안된다.)

아침 일어나서 처음 가는 화장실이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나는 비로소 아침이 되었음을 새로운 하루가 나에게 주어졌음을 실감하곤 한다.


작년 지하주차장에서 넘어졌을 때는 분명

1M 앞에 세차를 하는 가족들이 세 명쯤 있었는데

아무도 나에게 달려와서 안전을 살펴주지 않았다.

아마 살짝 넘어졌다고 생각했고 내가 민망해할까봐 일부러 모른척 했었을지도 모른다만.

생각보다 세게 넘어져 족히 일분간은 못 일어났는데 말이다.

그때 핸드폰은 옷에서 떨어져나가 약간 기어가야 잡을 수 있는 위치였는데

아마도 더 심했다면 기어가서 119에 신고를 해야했을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맞는지

옷에 넣어다니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이름 그대로 손에 꼭 들고 나니는 것이 맞는지까지는 아직은 파악이 힘들다.

그러나 어느 사고의 순간에 내 손이 닿는 위치에 핸드폰이 있어야만 한다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그냥 넘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크게 다친 것이었다는 내용의 SNS 가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응급의학과 교수 제자의 말에 따르면 집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기간이 명절 기간이라 했다.

응급실에 의료진은 가장 부족한데(그들도 명절인데 쉬어야하지 않겠나. 가족도 만나고 말이다.)

환자는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기간이니

응급실이 대략 어떨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절대 아프지 않은 명절을 보내야 한다.

핸드폰을 꼭 손에 쥐고 말이다.

휴대폰, 셀룰러폰, 스마트폰 보다도 나에게는 핸드폰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이름대로 간다.


(어제 핸드폰으로 찍은 집 뒤편 저수지에서의 평온한 일몰 사진이다. 핸드폰의 첫번째 존재 이유가 안전이라면 두번째는 정보 탐색이고 세번째는 사진 촬영이다. 나에게 있어서의 순위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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