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인생
명절의 끝은 항상 남편과의 말싸움이다.
아들이 가고 나면 나는 못해준 것에 대한 아쉬움만 남는데
남편은 아들의 못마땅한 점만 남는 모양이다.
나나 아들은 그리 살가운 편이 못된다.
남편은 자기도 안 그렇고 심지어 연락도 안하는 스타일이면서
아들은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인사도 잘하고
남들을 두루 두루 잘 살피는 그런 스타일을 희망하나보다.
매번 아쉬움을 토로한다.
월요일 시아버님 기일인데 국립현충원에서 모이자고 갑자기 이틀전 통보를 했다.
나에게도.
월요일 오후 심사 아르바이트가 예정되어 있고
개인적인 모임이 저녁에 있는데 그러자고 하고 기차표도 끊었다.
남편은 어르신 우대로 나는 일반으로.
그런데 남편이 어제 저녁 밥을 먹다가 그 이야기를 슬쩍 꺼낸다.
아들 녀석도 왔으면 좋겠다는 뜻을 슬쩍 표현하는거다.
그게 강제적으로 오라는 뜻은 절대 아니라고 하나 강요가 아니고 무언가?
회사인 길동에서 국립현충원까지 점심 시간에 왕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외출이나 조퇴를 쓰면 가능하겠지만
1월말에 일본 여행으로 연가를 왕창 썼던터라
내가 평일이라 쉽지않다고 먼저 말을 잘랐더니
(아들 녀석이 답하기 껄끄러울까봐)
아들이 가고 났더니 그걸 트집잡아
아들 녀석이 조금만 신경쓰면 왔다갈 수 있는데
안 그래서 서운하다고 하고
점점 이야기에 이야기가 더 보태져서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등의 여러 가지 레파토리를 쏟아낸다.
아들 녀석에게 무엇 하나 해준게 없는 아버지인데
(생물학적인 아버지 빼고 말이다. 육아나 교육에는 전혀 한 일이 없다.)
그것은 깜빡하나보다.
매번 똑같은 레파토리이다.
나를 닮은 스타일의 아들 녀석의 편을 들어주다보면
요새 젊은 세대들의 특성에 대해 저리도 모를까 싶기도 하고
세상은 바뀌었는데 남편은 어찌 저리 80년대 후반에 머물러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한때는 폼나는 대기업 직원이었는데 말이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화가 난다.
이제 그러려니 하는데(아프기 전까지는 주말에 가끔 잠깐씩 봤으니 저 정도로 상태가 심각할 줄은 몰랐다.)
한 얘기 또하고 또하고(이것은 거의 치매환자의 수준 아닌가 싶다.)
자신의 기준과 잣대가 제일 소중하고(그 기준과 잣대가 사회와 세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하는거 아니냐?)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존재한다.
답답하다. 명절의 끝은 항상 이렇다.
점심도 가래떡 구워 먹자했더니 세상 쿨한 표정으로다가 간단한(?) 떡국을 주문한다.
그때 이미 빈정이 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음식을 해본 적이 없으니 떡국이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세상에 간단한 음식은 없다.)
가래떡 얇게 썰어야지(얇게 썰어달란다. 이빨이 아프다고)
달걀 지단 부쳐야지 김 썰어 올려야지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데 그러냐.
그래서 내가 그냥 가래떡 구워서 꿀 찍어서 먹자고 하지 않았냐. (내거 먹어보더니 자기도 세 개나 먹더구만.)
어제 오늘 나름 음식 챙기고 늘어난 설거지에 지친
내 상태는(아직도 발 부상 중이다.)
왜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거냐.
나도 이제 많이 늙었는데 말이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왜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나의 하나뿐인 아들 녀석을 비난하는 것이냐.
참으로 답답하다.
인생은 도돌이표.
늦은 산책이나 가보련다. 기도문이라도 외워야 하겠다.
이 글을 읽는 이 땅의 남편님들 중 뜨끔하신 분이 없기를 희망한다.
(이 글을 쓰고 쓰레기를 팍팍 버리고
골프 연습장에서 공을 후려패고 있다.
오늘은 그 시끄러운 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