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봐주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시댁에서 명절 제사가 끝나고나면 나는 마음이 바빴다.
아들이 없어서 명절 때 두분만 계실 친정부모님 생각이 절로 나서였다.
그런데 남편은 매번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
점심 먹고 누나네가 온다는데 보고 가고 싶은거다.
그 마음도 조금은 알겠다만
아니 형님은 여성학을 공부하신 분이(그것도 유학까지 가셔서)
본인은 시댁에서 제사도 안지내고 친정 부모님 뵈러 느즈막히 오는데
(부부가 모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스타일이시다.)
나는 그 전날부터 시댁에 와서 전부치고 세끼 식사 준비하고 과일깍고 손님 맞느라 허리가 아픈데
또 시누이 밥상 차리고 설거지까지 하고 친정에 가야하는지 정말 알 수 없어서
딱 한번은 나와 아들 녀석만 수원 시댁에서 먼저 나오는 용기를 발휘했었다.
누나가 그리 보고 싶다는 남편은 놔두고 말이다.
오지 않는 택시를 간신히 타고(그때만해도 콜택시가 없었을때이다.)
수원역에 가서 운좋게 영등포역까지 기차표가 있어서 기차를 타고(안되면 지하철을 타려했었다.)
영등포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서 목동 친정집에 도착하고는
화가 나고 분하고 힘이 들어서 작은 방에서 쪽잠이 들었었다.
그런 나를 아마도 엄마는 안타깝게 내려다 보셨던 것 같다.
자면서도 그 눈빛이 느껴졌었다.
그날도 아마 여지없이 나에게 <헛똑똑이>라면서 혀를 끌끌차셨던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내려온 아들 녀석에게 나는 올라가는 길이 많이 막힐 것 같다고 빠른 출발을 권했다.
어디에 쓰려는지 차를 가지고 올라간다하니 말이다.
내가 아들을 오래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아들 녀석이 힘든 것은 정말 싫으니
내 욕심을 버리는 쪽을 기꺼이 선택한다.
그래도 츤데레 스타일을 지향하는 아들 녀석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명절 인사용 상차림을 해놓은 것에 목례로 인사도 해주었고
로켓 배송으로 새벽에 도착한 프린터 토너도 교체해주었고
아버지의 유품인 그림이 붉은 말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카톡 프사를 하겠냐면서 그림만 멋지게 찍어서 보내주고
고양이 설이의 눈꼽과 코를 정성껏 닦아서 미모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주고는
이별의 달콤한 츄르 하나를 먹이고서는
미련없이 귀경길에 올랐다.
주차 위치를 알려주려고 함께 내려간 나는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아들 녀석의 떠나는 뒷모습을 오래토록 바라봐주었다.
어제 짧은 영상에 올라온 것을 보니
<불꽃야구>의 김성근 감독님께서도
명절맞이 세배 온 선수들이 돌아가는 길을
밖에까지 따라나와 오래토록 바라보고 계셨었다.
마치 나의 아버지가 그러셨던 모습으로 말이다.
잊지않고 명절을 맞이해서 세배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행복한 일이고
이를 오래토록 배웅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련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겠다.
그날.
시댁에서 아들과 둘이 도망치듯이 기차를 타고 친정집에 도착한 그날.
저녁 늦게 집에 간다고 어린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서는데
엄마는 굳이 쓰레기를 버린다고 나오시면서
오래토록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셨었다.
오늘 내가 아들을 보내면서 그랬듯이.
다행히 아들 녀석은 방금 전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되었다.
점심은 간단히 떼우고 싶은데 환자인 남편이 있어서 어쩔까 모르겠다.
나는 어제 못자서 이제 슬슬 졸려오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고 가래떡 잘게 잘라 희망한 간단한 떡국을 끓여드렸고 나는 며칠 전처럼 한번 더 가래떡 구워 엿에 콩콩 찍어 먹었다. 내 거 하나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남편도 서너개 따라 먹더라. 아무래도 미운 큰 아들인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