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과 용산역
보너스처럼 생긴 아르바이트를 하러 서울로 출발하면서는
오늘 시간 제약없이 2월 춥지않은 서울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
내일 아침 일찍 아무것도 안먹고 혈액 검사를 가리라 생각했다.
물론 믿는 구석인 막내동생 아파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시반 오래된 동료들과의 약속도 있으니 말이다.
얼굴 못본지 얼추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내 정년퇴직 기념 모임이후로 못보았으니 말이다.
용산역에서 내려 고민끝에
아들 녀석과 먹고싶은게 딱히 생각나지 않을때
주로 먹던 콩나물국밥을 점심으로 픽했다.
용산역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주상복합아파트에서 4년을 살았었다.
밥 하기 귀찮거나 아들과 나 둘 중 한명의 컨디션이 저조할때면
그 곳 콩나물국밥에 달걀 넣고 김 가루 내어서 국물에 적시고 오징어 젓갈 올려서 먹곤 했다.
감기 예방약이었던 셈이다.
아들 녀석에게 음식 사진을 보냈더니
여기가 어딘지 왜 내가 그 식당을 선택했는지
그 마음은 어떨지 맥락과 서사까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
점심 후 교육청 회의 시간까지 꼭 해야될 일은
고장난 실팔찌를 수선하는 일이다.
구입처는 나의 오랜 단골 사직동 옷집이다.
정확하게는 광화문역 뒷편
행정구역상으로는 사직동인
내가 2년간 살았던 아파트 근처이다.
손재주 좋은 사장님이 실팔찌 두 개를 고치는 동안
나는 3월말까지는 목에 두르고 다닐
작은 사이즈의 울 목도리를 골랐고
(끝내 목도리를 찾지 못했다.)
자주 들렀던 공용화장실에서 고장으로 나오지 않는 수돗물 때문에 가까스로 이빨도 닦았다.
수선된 팔찌를 다시 차고
2년간 나의 출근길이었던
그 길의 변화를 살피면서
교육청까지 걸어갔다.
날이 안 추워서 옛생각에 젖어 걷는 길이었다.
생각보다 평가 회의가 일찍 끝났다.
고민을 잠시 했지만 집에 내려가기로 한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마음이 편할 때 보는것으로 미룬다.
나 빼고도 십여명이 넘게 모일테니
나는 회비만 보내면 되리라.
혼자 밥 차려먹을 남편이 눈에 밟히고
(물론 오늘 점심도 차려먹었을 것이고
내일도 찾아먹어야한다만)
배송 왔다는 먹거리도 상할까 걱정되고
고양이 설이 눈물샘도 닦아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우선적이다.
요새 부쩍 눈 주위가 쉽게 더러워져서
설이 미모에 먹칠을 하곤 한다.
다시 용산역.
한때 나의 집이었던 곳을 한번 올려다본다.
오늘 지나간 용산역에서 사직동 그리고 서대문역은
다 내가 살았고 출근했던 익숙한 공간들이다.
이렇게 보너스처럼 추억팔이를 하며 오늘의 서울행을 마무리한다.
내일의 서울은 을지로4가와 홍대쪽이니
오늘과는 전혀 다른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
새 추억을 만들기는 힘들다만
옛 추억을 돌이키는 일은 참 쉽다.
특별한 그곳에 가기만 하면 오토매틱 시스템으로 추억이 방울방울 샘솟는다.
<추억은 사랑을 타고>가 아니고
<장소가 추억을 불러오고>가 더 맞는거 아닌가 싶다만.
(보너스 같던 하루가 일 잘못하는 사람 때문에 마무리에서 확 기분이 망가진다.
또 금요일 다섯시가 넘어서 무슨 서류를 달라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대체 일과시간중에는 뭐하는거냐?
그 사람은. 오늘은 참지 못하고 바른 말을 쏘아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