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피력하기(업무편)

다 나름의 철학은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2만보를 넘게 걸었으니 힘든게 당연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다리가 무겁거나 다친 발목 주위가 아픈 것은 아니니 다행이다.

오늘 하루 종일 푹 쉬고 뒹굴 예정이다만

세상 모르는 일이니 일단 계획만 그리 세운다.

어제 날씨는 너무 포근해서 코트를 벗고 걷는 사람들도 종종 보일 정도였는데

아직 겨울이 완전히 물러간 것은 절대 아닐거라는 마음으로 3월 2주차까지를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꽃샘추위에 홀라당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마음속에 부글부글했던 이야기를 써본다.

그 사람을 힐난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 한 고등학교에 하루 6시간 시간 강사를 해주마 결정했다.

친한 후배가 그 학교 교무부장인데

6시간까지 수업 강사를 신청할 수 있고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수업을 경감해준다는게 목적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과학 강사는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고(기간제도 구인난이다.)

2주일 이상 구인 공고를 했지만 아무도 지원자가 없고

후배는 너무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읍소에 읍소를 거듭하여서

마지못해 오지라퍼 성격을 또 발동시켰었다.

마침 강의 범위도 통합과학이라 대학에서의 강의와 연계성이 있곤해서 말이다.

그런데 행정절차가 있다.

어느 학교에건 몇 시간을 하건(심지어 특강강사님들까지도) 학생들과 만나게 되니 꼭 필요한 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학교에 오래 있었으니

그리고 교무부장도 했으니 그 절차를 꿰차고 있는데

그 학교 행정실에서 영 연락이 없는거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할 수는 없으니 기다렸다.


정확하게 구정 전 2월 12일 목요일 5시 퇴근 시간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방학 중인데 초과 근무까지 하나보다 싶어서 안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연말정산 업무의 시기이다보니)

작은 목소리로 웅얼 웅얼 서류가 필요하단다.

언제 학교에 오시겠냐고 물어본다. 이건 아닌데?

아니 서류를 준비해야 학교를 가지

서류도 없는데 학교를 왜 가는거냐?

나는 필요한 서류를 문자로 보내주시면 준비해서 보내겠다했다.

그 내용까지 알아듣는데도 엄청 힘이 들었다.

모기만한 소리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안내 문자가 안들어온다.

그날 밤까지도 말이다.

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안된건가 걱정이 된다.


다음날 오전 9시.

근무가 시작되었을 시간에 맞추어 내가 전화를 한다.

필요서류 문자가 안들어왔다고.

담당자는 아 네네 하는 작은 목소리만 들린다.

보내주십사 정중하게 다시 안내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계속 문자가 안온다.

엄청 바쁜 다른 일이 있나보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드디어 한 시간 후 문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행정실에서 안내드립니다. 제출하셔야 하는 시간강사 서류 목록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대학교 졸업증명서 1부, 주민등록등본 1부, 기본증명서(상세) 1부, 주민등록초본 1부, 경력증명서(원본) 1부, 채용신체검사서 1부, 마약류 검사 결과 통보서 또는 마약류 중독 여부 진단서 1부, 통장사본 1부입니다. 기타 문의 사항이 있으실 경우 연락주세요. 고맙습니다.]

이해할 수는 없다만 이렇게 많은 문서가 필요하다.

2025년까지 같은 교육청 공무원이었는데도 말이다.

원칙이니 어쩌겠나.

어제 그 검사를 하러 병원을 아침부터 공복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 금요일 또 업무 시간이 지난 다섯시가 넘어서 전화가 들어온다.

금요일 오후 사람많은 기차에 간신히 탑승한 시간이라 들리지도 않는데 또 조그마한 소리로 웅얼거린다. 그분이다.

학교에 언제 오시겠냐고 또 물어본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서류를 떼야하는데 명절 휴가라 못했을 것이 너무도 뻔한데 말이다.

그리고는 추가 서류를 말한다.(간신히 알아들은 내용이다.)

성범죄 경력 및 아동학대관련범죄 전력 조회동의서와 행정정보 제공동의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 왜 필요서류에 안들어가 있나 했다.

경찰서에서 회신도 받아야하는데 말이다.

(회신까지 보통 이틀 정도가 소요된다.)

파일을 보내면 내가 답메일로 보내겠다 이야기를 하고 끊었다.

그런데 문자가 7시가 넘어서 들어온다.

그리고 이미 금요일이라 공문 발송은 월요일에나 가능하다.

이분은 또 구정을 앞두고 초과근무 중이신가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싶다.

학교에 오래 있었던 나로서는 신기할 뿐이다.

구정 명절 연휴 전날 초과근무라니.


그런데 문자를 보니 해당 서류 파일을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어느 공유 문서 사이트에서 다운받으라고 안내해두었더라.

집에 와서 그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세상에나 문서를 PDF 형태로 올려둔거다.

아니 학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HWP나 워드 형태로 주면

내가 작성해서 PDF 형태로 만들어 보내면 되는데

왜 더 여러번 손이 가게 하는거냐.

그 사람은 이 문서에 수기로 작성해서 스캔해서 보내기를 생각한 것인데

집에서 스캔할수 있는 프린터가 있을라는 법도 없고

고장나지 않으라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서류 작성자 입장에서 훨씬 편한 방법이 있는데 왜 이러는거냐?

일을 잘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나의 분노게이지가

이 부분에서 정점으로 치솟았다.


오늘 아침. 답메일을 보냈다.

개인정보에 민감하신지 메일도 학교 메일이더라. 전화번호도 물론 학교 번호이다.

다음은 정중하게 적은 메일 내용이다.

뵙지 못하고 메일로 답변 드립니다.

요청하신 서류 먼저 보냅니다.

기타 서류는 화요일 이후 병원에서 검사 결과지를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목요일까지 병원이 쉬었고 금요일 사전 약속된 다른 활동이 있어서 토요일 오전 검사 시행했습니다.)

그 이후에 전달 가능합니다.

수요일 제가 부산시교육청 업무가 하루 종일 있어서

목요일 오전 나머지 서류 배송이 가능합니다.

업무에 지장이 없으실지 걱정됩니다.

목요일 오전에 기타 서류 가져다 드리러 방문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메일 드리는 저 문서는 메일로

한글 파일 형태로 보내주시면 훨씬 일이 편했을 듯 합니다만.

PDF로 보내주시면 수기 작성해서 스캔해야만 하는데 집에서 스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핸드폰 사진 찍어서 보내기는 화질이 떨어지고요.

한글로 주시면 작업해서 PDF 처리하는 것이

그 서류를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편리합니다.

이번에는 PDF를 워드로 바꿔서 작업하고 다시 PDF로 변환했네요.

같은 업무를 다른 분에게도 하셔야 할 듯해서 개인 의견 드립니다.)


정중하게 쓴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 사람의 업무 스타일을 위해서라도 꼭 알려주고 싶었다.

더욱 쉬운 방법이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만

아직 한글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교육기관에서는 대부분 나처럼 한글파일 형태로 주고 PDF 형태로 보낸다.

순전히 내 오지랖의 발동이고 교육계 선배의 이야기이니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만

못 알아들어도 할 수 없다.

한번 전달은 했으니 내가 할 몫은 다했다.

업무라는 것은 항상 업무 담당자가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의 입장을 한번만 생각해보면

간소화와 호율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이 그러하다.

아침부터 개똥철학(업무편)을 늘어놓았다.

이 글로서 그 분에 대한 화남은 모두 없앤다.

이 기회에 건강검진 약식으로 한번 했다고 생각하고

PDF 변환에 대한 다양한 실습했다고 생각하련다.

보너스 같은 어젯밤 달사진다시 보면서

눈과 마음을 정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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