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만.

현실은 다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런 날은 내 한해 365일 중 며칠 되지 않는다.

아픈 날을 제외하고는 아프지 않은데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은 별로 없다.

아픈 남편 식사를 챙겨야하고

고양이 설이 먹을 것과 기타 케어하는 일들

(배변장 정리 및 우쭈쭈 등 말이다.)

집에 없으면 모를까 집에 있으면서 안 할 수는 없고

이런 날 꼭 거실 바닥에 고양이 털과 먼지는 햇빛을 받아 더더욱 빤짝거린다.

오전 낮잠을 한숨 자고는 할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어제 하루 종일 집에 없었더니 고양이도 애정 결핍이 왔는지

어제 밤새 내 침대 옆에서 자더니

오늘 나의 낮잠 때도 내 옆을 지켰다.


그런데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자꾸 일거리가 눈에 뵌다.

이제 구정과 아들 맞이로 꽉찼던 냉장고를 거의 비웠으니

무언가 반찬을 해야만 하고

묵은 총각김치 시큼한 냄새 때문에 할 수없이

푹푹 끓여 설탕 넣고 볶음김치로 만들고 있고

하루만 처리안하면 쌓이는 분리 수거가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남편 방과 화장실 청소도 해야할 때가 되었다.

그 와중에 방학은 정말 공식적으로 딱 일주일이 남은 셈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어제 친구랑 우리는 절대 서두르면 안된다고

모든 일을 서서히 하자고 그리 약속했건만 말이다.

서두르다가 다치고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일단 청소기를 돌리고 있고 김치를 다 볶았고

남은 잔반을 모아두었으니

이따가 나가서 한번에 분리수거를 하면 될 것이고

이틀 못한 골프 연습 30분을 하면서 근육을 풀어보고

2월 관리비 고지서를 찾아와서 입금 처리를 하면 되겠다.

그 사이 남편은 산책을 나가(나는 어제 2만보이상 걸어서 오늘은 산책은 쉰다.)

내일 시아버님 현충원 추모 모임에 가지고 갈 것을 사가지고 온다했다.

그것까지 나에게 시키기는 미안했나보다.


어제 광화문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기념품샵에서 한참을 망설였었다.

사실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기념품샵에 들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나를 유혹한 것은 필기도구와(끝 부분에 작품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액막이 기능을 한다는 요새 한창 유행인 명태인지 북어인지 알 수 없는 액세사리 였다.

이제 그런 것들을 자꾸 사들일 나이가 아닌데

(있는 것도 정리할 나이이다.)

필기도구는 수강생들에게 줄 선물로(대학생이 될지 고등학생이 될지 아니면 영재원의 중학생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액막이 기능은 아들 녀석에게 하나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나는 모르겠는데 아직 앞 날이 챙챙한 아들 녀석에게는 불행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니 말이다.

간신히 소유욕을 내려놓고 왔는데

오늘 다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제했던 소유욕이 다시금 뭉클 올라온다.

이 브런치 대문 사진이다.

나는 사이즈가 큰 것보다 이런 올망졸망한 귀여운 것을 좋아라하는 스타일이다.

반찬도 이것 저것 조금씩 다르게 해서 먹는 스타일인데

남편은 큰 손 어머님의 영향으로 자꾸 똑같은 것을 찾는다.

지난주에 먹었던 만두를 점심으로 먹겠다하는데

나는 만두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느끼하다.

한번 먹으면 최소 2주는 지나야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게 당연한거 아니냐?

김치와 밑반찬류 빼고 말이다.

다행히 만두 3알이 남아있었고

그것과 깍두기볶음밥에 달걀 후라이 올려주었다.

그런데 왜 나는 어제 점심 친구와 함께 먹은 평양냉면과 녹두 빈대떡 이후에

식욕이 딱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먹고 싶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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