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위험하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점심 글에 썼다만
해야할 일을 꾸역꾸역하는게 나의 단점이다.
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말이다.
콩나물을 다듬에서 반은 무채와 함께 달래장 얹어서 저녁에 먹으려고 삶아 두었고
나머지 반은 신김치 빨아서 잘게 썰어서 콩나물김치국으로 끓여두었고
건조 생선 산 꾸러미에서 고등어를 하나 해동시키고 보니 세 토막이나 되어서
할 수 없이 두토막은 무, 양파, 대파 넣고 조림하고
한 마리는 구워두었다.
이러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쓰레가 분리수거를 하고서는 간단히 어깨 근육을 풀어보려 골프연습장에 들렀다.
원래 30여분 이상 연습도 못하는 저질 체력이기는 하다.
이 아파트 골프 연습장은 신기하게도 타석 기기마다
다 세팅이 달라서
한 일곱 번쯤 갔는데 여전히 처음 보는 경우에 부딪힌다.
오늘은 아예 비어있는 타석에 화면도 안들어오고
(빔을 켜는 리모티곤은 지난번에 찾아두었다.)
컴퓨터 자체도 꺼져있고(옆 타석 우락부락 아저씨가 전원 버튼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났더니 타석의 공이 안올라오더라.
고장났나 싶어서 마침 다 끝나가는 옆 타석으로 옮기려했더니
아까 그 우락부락 아저씨가 티가 작동하는 버튼을 찾아서 눌러주셨다.
아마도 오늘 이 자리는 누구도 한번도 사용을 안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이전 사용자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모든 전원을 다 오프시켜 놓고 나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그리고 막 연습을 시작하려는데 그 우락부락 아저씨가 홀인원을 했다면서 엄청 기뻐한다.
나를 도와주는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은걸지도 모른다만.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축하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그렇고 뻘쭘하니 웃음만 보냈는데(천상 내향형 인간이다.)
그 아저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내 정신이 홀라당 나갔다.
기분이 무지 좋긴 좋겠다.
간신히 보기 플레이를 하면서 네 번째 홀을 지났을까.
갑자기 연습장 내 화재 감지등이 울리기 시작한다.
골프 연습장에는 다섯명 정도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만
나는 혹시 내가 음식을 만들고서 가스를 제대로
안 잠그고 나온 것인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익숙하지 않은 이 곳 지리가 겁나서 주섬주섬 골프채를 정리한다.
서두르지 말자. 침착하자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말이다.
물론 화재 냄새는 나지도 않았다만(나혼자 모의 대피훈련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골프채를 라커에 넣어두고 우리동을 올라오는데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한다.
적어도 우리동에서 화재가 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래도 18층까지 올라오는데 마음이 콩닥거린다.
집에 들어와서 가스를 제대로 껐다는 것과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진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만
꼼짝하지 않고 골프 연습에 매진하던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내가 이상했을지 모르겠다.
안전불감증이냐 내 건망증이냐?
둘 다 위험하다만 큰 사고는 대부분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다.
나의 건망증은 사소한 것이고 나에게만 불편을 초래한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방금 전 오작동이었다고
사죄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다음 번 진짜 사고가 나도 아무도 안 움직일지 모른다.
이미 동화에서 읽어서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그 상황에 부딪히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오늘 그린 세 점의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든 것을 대문 사진으로 골랐다. 서울역사박물관 앞 기차 작품의 애타는 어머니를 그린 것이다. 도시락을 놓고 학교에 가는 통학 기차를 탄 아들 녀석에게 어떻게든 도시락을 전달해주고 싶은 어미의 마음을 절절하게 나타낸 명작이다. 그런데 엄마 허리를 너무 길게 그린 것인지 포대기로 묶은 동생이 너무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어쩌겠나. 아이를 들쳐업는 일은 원래 어려운 법이다. 그나저나 그림을 그리고 보니 우리 엄마 도시락이 그립다. 멸치볶음이랑 김치 그리고 달걀 후라이 밖에 없었다만. 곧 엄마 생일이자 기일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