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과 속도는 모두 다르지만
어제 번개팅으로 작년 졸업생 제자들을 만났다.
밴드 동아리로 연주 연습을 함께 하고
두근거리며 축제의 클로징을 2년간 함께 한
언제나 맛난 것을 사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녀석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북촌에서 맛난 저녁과 빙수를 함께 먹은 이후로 반년만에 보는 녀석들은
키도 크고 덩치도 커져서
이제 누가 보아도 고등학생임을 한 눈에 알아볼만큼이 되었다.
저녁 약속이 있었던터라 밥은 못사주고
달달한 디저트만 사준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무게감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해주었고
재수의 힘들고 암울함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으니
아마도 다음 주 개학부터는 나름의 방법과 속도로 최선을 다할 것이 틀림없다.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영재성 또한 다양하다.
A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물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한정이기는 하다만.
그 나이에 그 정도로 집요하게 자료도 검색하고 애교도 떨어보고 질문도 해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무엇을 전공하든 어떤 직업을 가지든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성향이다.
흔히들 <무인도에 가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지나치게 잔머리만 굴리는 나쁜 길로만 들어서지 않는다면
문제해결 영재로서의 즐거운 삶을 지혜롭게 잘 살아내리라 생각한다.
B는 엄청 솔직하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빠르고 쿨한 인정이 매력이다.
변명이나 집착보다는 빠른 인정이 사실 훨씬 어려운 편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그걸 못해서 사회생활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리고 먼저 전화하고 연락하는 것을 좋아라한다.
먼저 연락하는 일 자체를 자존심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회성 영재임에 틀림없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나 계획이라도 말이다.
C 와 D 는 누가보아도 학교에서 최고의 모범생이다.
진중하고 학업에 열중하며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학업이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그 나이에 그러기는 쉽지 않고 어떨때는 2번째 인생을 사는 중인가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점잖다.
어려운 공부도 잘 찾아하는 와중에 악기 연주도 빼먹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견할 따름이다.
진로 설정도 커다란 틀에서는 정한 것 같은데 쉽사리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 나이대의 특징인 빈말과 과장이나 허황된 말이 없다.
자연계 정도로만 자신의 마음을 살짝 비춘다.
그래서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신중한 그들의 마음이 다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둘은 교사 입장에서 본다면 담임 학급에 있으면 인성까지 갖춘 완성형 영재이자 보석같은 존재이다.
E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스타일은 아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좋아하는 교과목과 아닌 것, 먹고 싶은 것과 아닌 것, 좋아라하는 친구와 아닌 사람,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이 확실하다.
그래서 오히려 진로를 결정하거나 앞날의 무언가를 결정하기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보니 모든 것을 잘 할 수도 없고 잘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제일 좋아라하고 잘하는 것만 잘 살려도 가치가 충분하더라.
너무 많은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이 오히려 망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올인하는 집중형 영재의 길을 가면 된다.
오늘 먼 대치동 학원에서 오느라 얼굴을 못본 현재 영재고에 다니고 있는 F가 걱정이긴 하다.
능력은 많은데 그 능력이 집중되지 못하고
시기와 환경에 따라 분산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몰입하는 그의 최대치 역량에 기대해본다.
오늘 만났다면 OMR 카드 미작성 사건과 썸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주려했는데
다른 녀석들에게 이야기했으니 아마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비밀이 없는 오래된 친구 사이이니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색깔의 녀석들이 어떻게 멋지게 커 갈 것인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믿는다.
모두들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멋진 삶을 만들어갈 것을 말이다.
바빴던 어제 다 못한 이야기를 오늘 글로 적어보았다.
어제의 만남이 짧아서 아쉬웠지만 바쁜 고등학생들과 오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대학생이 되어 첫 밴드 연습하는 날 생맥주 건배나 해보자꾸나.
그때까지 가야할 길이 꽤 험하지만 다들 잘 버티고 힘을 내주리라 믿는다.
오늘 대문 사진처럼 다양한 방향과 속도와 방법으로 자신의 앞날을 잘 개척해나가리라 믿는다.
누군가가 믿고 있다는 그것이 얼마나 큰 의무이자 책임감이 되는 것인지도 잘 기억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