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 스타일에 대한 변명

그림은 보는 사람 마음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내 학창 시절 아킬레스건은 미술 교과였다.

열심히 그린다고 그려도 학급 뒤편 게시판에 붙는 영광을 차지하기 힘들었고

모든 교과목 올 수에 도전하였으나 매번 그 발목을 잡는 것은 미술교과였다.

물론 시험을 봐서 점수를 받는다면 수가 가능했겠다만.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정물화나 인물화 그리고 세밀화에 특히 젬병이다.

학교 때도 구성이나 디자인 영역을 할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석고상을 보고 데생을 한다거나

친구를 앉혀놓고 인물화를 그린다거나

사과랑 꽃병을 놓고 정물화를 그리는 부분에는 취약했다.

대학 때 제일 좋아라하던 생물을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그림을 너무 많이 그려야해서였다.

그때는 현미경으로 본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야했던 때이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림이 점점 더 이상해져만 갔다.

아마도 대부분 요즈음의 고양이 설이 그림처럼 자꾸 뚱뚱해져갔던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참 화풍에도 일관성이 작용하나보다.

지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에게 인생이란 공부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미술에 대한 관심은 개속되었다.

보통 잘 못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으로 싹 사라지는 다른 것들과 달리 말이다.

아무리 좋아라하는 <불꽃야구> 경기도 지는 경기는 다시 보기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미술이 어려웠으면 나몰라라 했을법도 한데

전시나 그림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으니 말이다.

물론 디자인이나 구성 그리고 공간에 대한 미술적인 감각은 계속 살아있었다.

잘 만들거나 그리지는 못해도 보는 눈은 있는 법이다.


아마도 2019년쯤 SNS에서 그림을 배울수 있다는 안내에 혹해서

(아니 그 선생님의 화풍이 좋아서)

6개월쯤 그림을 그리러 다녔었다.

처음에는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의 카페였고

얼마지나서는 문래역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지하 작업실이었다.

몇 명 되지는 않지만 그날의 주어진 사진을 보고 따라서 그리고

채색을 하면서 음식도 나눠먹고 수다도 떠는 정신적인 해방감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만

여전히 그 사진과 똑같이 그려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은 존재했다.

나만 못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점 가기가 싫어지고 길이 먼 것 같고 빠지는 핑계가 자주 생기고 해서

문래동 작업실에 내 화구를 일부 놓아둔 채 다시는 가지 못한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지금도 그 선생님의 작품이 SNS에 올라오면 좋아요를 눌러주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은 그 분의 골목길 풍경을 그린 어반스케치 형태의 그림이었는데

요즈음은 강렬한 색채감의 추상화에 매진하시는 것 같아 다소 아쉬움이 있다.


긴긴 방학 너무도 심심해서 다시금 그림을 그렸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SNS에 올렸더니 어제 만났던 나의 제자들도 봤나보다.

거짓말은 못하는 녀석이 대뜸 이야기한다.

나의 제자인이기도 한 방송인 <전현무>님의 화풍과 비슷하다고.

한때 그가 무스키아라는 예명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고 있고

꽤나 독특하고 파격적인 색감과 그림이었다는 것도 아는데

내가 그 정도인가 싶은 마음에

어제 그들과 함께 였던 카페의 시그니처 고양이 모양을 그려보았다.

하필 또 고양이라니.

이러다가 고양이 화가로 소문이 날 판인데

뚱뚱하게 그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너무 과하게 작용했는지 영 귀엽지가 않다.

이 그림을 그리고 어제 그 녀석들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역시 제자이나 이제는 연락이 끊긴 <전현무>님의 화풍과의 차별화된 점을 역설했다.

그런데 어제 그 녀석 말이 맞긴 하다.

그녀석이 직설적이라 그렇지 없는 이야기를 하는 녀석은 아니다.

나 그림 엄청 못 그린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따뜻하다고 느끼는 몇 안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그림이나 예술 작품은 보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다.

열심히 그리고 그리다보면 조금은 실력이 늘거라고 기대한다.

이 글을 보고 <전현무>님에게 태클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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