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는 자세
어제 밤 9시에 강의 나가는 대학의 온라인 줌 회의가 있었다.
회의 주제는 2027학년도 교육과정 방향성, 과목 변경 및 신규 과목 개발 안내, 1학기 AI 허용 가이드, Q&A 등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밤 9시는 내 초저녁 잠이 들어오는 시간 즈음이어서 집중력이 0이다.
그리고 어제는 1박 2일 꽉 채운 봄맞이 서울 일정으로 피로도가 최상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비디오를 띄우지 않고 보는 척 줌 회의에 연결만 해둘 것인가
아니면 졸음을 억지로 참고 들어볼 것인가
아니면 깨끗이 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나중에 물어볼 것인가?
8시 50분에서 5분 정도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그냥 깨끗한 불참을 선택했다.
아니다. 밀려오는 졸음에 졌다고 볼 수 있다.
띄우고 보는 척 하는 것과 참고 들어보는 것은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참여자가 수적으로 많다는 안도감도 대단하다.)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닐테니 말이다.
차라리 안들었다고 하고 그 내용 요약을 읽어본 후 세밀하게 내 교과에 관련하여 업무 총괄자인
교양교육원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교과목의 목표는 같더라도 네이밍은 변화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인물로 보는 과학의 역사>는 너무 매력적이지 않다.
강의를 듣지않고 선택하는 지금 시스템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참을 선택한 이유는
그 시간에 잠을 안자면 나의 어제 몫의 잠이 날라가고
(초저녁 잠이 몰려올 때 안자면 그날을 꼬박 못자는 전례가 많았다.)
그러면 아플것만 같다는 조짐이 보여서였다.
새 학기를 앞두고 아프면 정말 꽝이다.
시즌을 앞두고 열심히 훈련하다가 다치는
프로 야구 선수처럼 말이다.
내 유리 몸은 미리 미리 쉬어줘야만 한다.
그래도 8시 50분전까지는 회의 참여를 목적으로 참고 참으면서 시간을 기다렸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말이다.
막내 동생 집 뒷 베란다에 물건들을 넣어둔 장을 정리 차원에서 천으로 마감을 해두었는데
그 가림막 천에 그려진 그림을 사진 찍어 와서 따라 그린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고 그린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매사에 관찰력이 뛰어난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이 그림이 무엇인지를. 그런데 한 번에 못맞춘다.
그림이 또 원본과 전혀 다른가 싶었는데 동생의 대답은 그랬다.
그 천 속의 그림은 무채색인데(머리만 검정색)
이 그림은 채색을 했으니 동일한 그림으로 안보였다고.
그렇다. 무채색과 유채색은 이렇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무채색의 그림인데 내 맘대로 색을 입히면
느낌도 그림도 전혀 달라지는 거다.
내 생각에 무채색의 그림이 난이도가 훨씬 높고 고수만이 가능한 그림이다.
여러 색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 자체로 매력발산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묵화가 일반 수채화보다 더 고수들이 도전하는 장르일지도 모른다.
고양이 설이는 내가 집에 없었던 그저께 밤.
나를 기다리면서 그리워하면서(순전히 내 생각임)
내 침대에서 잤다고 한다.
그게 맞는 것인지 하필 내 침대에 조카 녀석이 보내온 사이즈 넉넉한 에코백선물을 올려두었더니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굳건하게 표시하려고 거기서 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에코백에 고양이 털이 몇 점 묻어있더라.
그리고는 어제도 얌전히 새벽 네시 정도까지는
내 옆에서 조용히 자다가
그 이후에는 여러 곳을 조용히 휘돌아다닌다.
우다다다 뛰어다니지 않는 것이 어디냐.
이제는 제법 이 공간을 다 파악했다는 듯 여유롭고 살도 조금 올랐다.
고양이 설이는 이사한 이 집에 이제 적응을 마친 듯한데
(다행이다. 이사는 고양이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라 했다.)
나는 조치원 살이에 적응이 끝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확실하다만.
1박 2일간의 봄맞이 서울 여행에서 질리도록 스타벅스를 보고 왔다.
주로 다닌 곳들이 번화가였으니 정말 한 집 건너서 카페 천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무리 스타벅스가 그립다고 해도 명분과 실리가 없는 곳을 마구 들어갈 정도의 매니아는 아니다.
그런데 가끔 달달구리한 케잌과 아메리카노가 생각나는 때가 분명 있기는 하다.
진정한 의미의 봄맞이 시간이 곧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매화나 목련이나 노란 꽃들을 보지 못했다.
봄은 유채색이어야만 한다.
미세먼지 가득한 무채색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