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하고 딱 일 년이 지났다.

벌써? 벌써!

by 태생적 오지라퍼

2025년 2월 28일자 정년퇴직이니

딱 일년이 지났고 오늘은 모든 학교의 새 학기 공식적인 시작일이다.

작년 오늘은 제주 여행을 갔었다.

그 사이에 고생한 나에게 주는 위로 여행이기도 했다만

3월 시작을 함께 할 수 없는 나의 도피 여행이기도 했다.

물론 혼자 가는 여행이어서 위로였는지 도피였는지 아니면 외로움 절감 여행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복합적이었을 것이다.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먹고 혼자 멍하니 깨어 있었다.

날씨래도 쨍하면 그나마 덜 슬펐을텐데

날씨도 딱 오늘 날씨처럼 서늘하고 을씨년스럽고

제주 특유의 바람도 불고 여하튼 그랬다.

그래도 제주 바다와 유채꽃이 나를 충분히 감동시켜 주었었니 그것으로 퉁쳤다.

오늘 출근을 하면서 막내는 여러번 이야기했다.

<왜 춥고 난리야? 학교 가고 싶지 않게.>

동감한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지금은 춥고 춥고 춥더라도 할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서는 길은 기쁘기만 하다.

그 일이 물론 땜빵이거나 일회성 일이거나 심지어

내 전공 분야의 일하고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어도 말이다.


제부도 가고 동생도 나가고 나니 더더욱 할 일이라고는 없다.

어제 늦게 집에 들어온 남편은 오늘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맞다.

가급적 방문을 열어보지 않는다.

내가 들어가면 고양이 설이가 함께 따라 들어가기 때문이다.

카톡을 보다가 지인들에게 내 안부 인사를 돌리기로 한다.

<잘 계시죠? 올해 저는 월, 화, 목요일만 강의일입니다. 다른 날은 프리하고 심심합니다. 알바 마구 불러주셔도 됩니다. >

누가봐도 심심하니 나에게 일을 달라는 문구로 보이는 거 맞겠지 하면서 말이다.

고액 알바는 바라지도 않고 소소하고 게다가 의미있는 일이라면 금상첨화인데 말이다.

그리고는 학교를 이동하거나 직위가 바뀌었거나 무언가 이동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파이팅하라는 톡도 같이 넣어두었다.

파이팅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을 몹시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너무도 바쁘고 정신이 없기에 답톡이 온 사람은 1/3쯤 밖에 안된다. 그러려니 한다.


남편 점심은 간단한 떡국이고

저녁은 홍합미역국과 생선구이(어제 먹다 남은 닭볶음도 있다.)

내일 아침용 당근 라페를 조금 만들어두고

그림을 하나 그리렸더니

새로 산 스케치북에 하자가 발견된다.

스케지북 종이가 너무 딱 붙어서 떼어지지가 않는거다.

할 수 없이 칼을 이용해서 강제로 접착을 떼어낸 후

내 지금의 희망 사항인

뷰가 멋진 카페에서의 시나몬 가루가 적당하게 뿌려진 음료 한잔을 그려본다.

물론 작업 중에 깔아 둔 유튜브 음악은 중간광고 없는 카페 매장음악이다.

그림까지 그리고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어제 단지내 커뮤니티센터 골프 연습장에서 옆 타석의 아저씨가

홀인원을 두 번 연달아 했다고 떡을 내겠다면서

오늘 12시에 꼭 오라하던 당부의 말을 떠올린다.

갈까, 말까 절대 떡 때문은 아니고 운동이자 연습삼아 가는 것이다만.

그런데 그 분은 어느 정도의 고수이길래

홀인원을 열흘만에 두 번이나 하는 것이냐?

나는 보기만 해도 엄청 흡족해하는 백순이인데 말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딱 일년이 지났다만

작년 제주에서 심난했던 마음이나

오늘 조치원에서 심난한 마음이나 그것이 그것이다.

내일은 오랫만에 아들과의 저녁 약속이 서울에서 있다.

안 가던 1박 2일 설악산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좋은 소식이 있는지 찔러봐야겠다.

다들 그렇게 기대하는 무엇 한가지인가만 있어도 버틸만한 삶일게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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