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시각 한정
내일 강의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다음 주부터는 당일 아침 기차를 탈 예정인데
내일은 첫 날이기도 하고
오늘 아들 녀석과의 저녁 약속이 있기도 해서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남편은 아산공장으로 가는데 물론 무궁화호이고(천안역까지라면 나도 그러겠다.)
나는 서울역까지인데 itx 이다.
걸리는 시간은 십오분 정도 차이나고
가격은 4,000원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무궁화호에는 비상시 작업을 할 수 있는
좌석별 받침대가 없고 충전기 꽂을 콘센트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십오분 정도 차이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마지노선이라는 점이다.
무궁화호를 가급적 타지 않는 나는 사치녀이다.
물 냄새가 역겨울 때가 있다.
입덧을 심하게 하고나서 부터인듯하다.
땀 냄새는 물론이고
아이 분유토 냄새와
독한 약을 먹는 남편의 소변 냄새는 더욱 그러하다.
화장실 수건을 남편은 계속 걸어두고
한 세 번은 닦고 또 닦고 세탁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물이 묻은 그 수건에서 나는 야리꾸리한 냄새가
온 화장실에 다른 냄새와 묘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거센 분자 운동을 하는 것이 싫다.
재빨리 세탁기에 수건을 투척한다.
자주 세탁을 돌리는 나는 사치녀이다.
근력 운동을 안해서 다리를 접질리고 삐끗해서
병원에 가고 파스를 뿌리고 밴드를 붙여대는
나를 못마땅해한다.
하루 십분씩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하라고 눈치를 준다.
아니 크게 아픈 사람이 누군데 자꾸 누가 누구를 훈계하는거냐? 기가 막힌다.
어제 먹은 음식이 있는데 또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방금 만든 것만 골라먹고
버터는 없냐 고구마는 없냐 물어보기 일쑤이다.
오늘 점심에 준 홍합미역국이 제일 맛났다나.
그게 다 돈값을 하는거다.
무조건 아끼면 맛난거는 생전 못 먹는다.
나는 틀림없이 사치녀이다.
남편 시각 한정으로는.
그래도 기차 탑승 전에 보란듯이 1,700원 짜리 커피를 하나 샀다.
(꽃 보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다.
오늘 대문 사진은 조치원역 가는 버스랑 택시를
코 앞에서 놓치고 터덜터덜 걷다가 발견한 필락말락 산수유이다.
나는 사치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