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이란다.
학교는 개학이라 정신없는 날이었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날이라
36년만에 정월대보름에 일어나는 월식을 제대로 관찰하고 즐길 수 있었다.
36년만이라.
내 생애 36년 전에는 매일 매일이 전쟁 같은 육아 시기이라
정월대보름이고 월식이고 아마 머릿속에도 없었을 때이다.
어제야말로 오롯이 달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나름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영상 촬영까지는 엄두를 내보지 못한다. 그건 전문가님 챤스를 써보련다.)
주변 어제 하루 몹시도 힘들고 피곤했을 후배
과학 선생님들에게 사진 나눔을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키운 아들 녀석에게도
월식 사진을 보내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다.
답은 심플하니 댕큐 한 문장이다.
이곳이 시골이라 광해가 없어서 잘 보인 것인지
구름이 다행히 길을 막지 않아 잘 보인 것인지
부분 월식부터 개기 월식까지 그 전 과정이 잘 보였고
(물론 그 사이에 남편 저녁 차려주려고 들어갔다가 나왔다만)
내 똥손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다 못 담았으나
내 눈과 마음에는 충분히 담았고
소원도 열심히 빌었으니 내 생애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지 모르는 월식 구경은 나름의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정월대보름에 일어나는 월식은 마지막일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더더욱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톡으로 멋지지는 않지만 기록에 의미를 둔 월식 사진을 나누다보니
이제 고2에 막 올라간 나의 마지막 학교 과학 동아리 녀석들이 수줍게 자신이 찍은 월식 사진을 올린다.
나랑 중학교 시절에 1년에 한 두 번씩 함께 천체 관측을 하던 녀석들이다.
망원경을 활용하거나 혹은 핸드폰으로 찍거나
그리고 잘 찍었거나 못 찍었거나 상관없이
그 바쁜 시간에 이슈가 되는 월식을 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 본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기특하다.
물론 나보다 다 사진은 잘 찍는다.
아무래도 목도 건강하고 핸드폰을 든 손의 악력이 나보다 더 나을 것이다만
잊지 않고 나에게도 그 사진을 보내주어 정말 기뻤다.
그렇게 과학에 물들어가면
교양으로서의 과학적 소양은 충분하게 되고
과학을 전공하려는 마음까지 들었다면 더더욱 감사한 일이다.
다음은 어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첫 강의 시간에
잠시 이야기 할 과학 상식을 적어본 것이다.
물론 지구, 태양, 달의 운동 및 산란에 대한 기본 개념을 알고 있냐 없냐에 좌우되기는 한다만
한번 들어보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나게 되어 있다.
이 이상 어려운 수준은 관심 있는 사람만 찾아보면 된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으로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고 달이 지구 주변을 공전하고 있을 때 이들이
태양 - 지구 - 달 순서대로 일직선상으로 배열이 되는 보름날에 관측된다.
하지만 달이 공전하는 궤도가 지구가 공전하는 궤도보다 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매달 월식이 관측되진 않는다.
즉, 월식은 언제나 보름달이 뜰 때에 일어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고
월식이 일어나는 것을 매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볼 수 있을 때 보는 것이 장땡이다.
달이 붉게 보이는 ‘블러드문’ 현상은 대기를 통과하는 태양빛 중 파장이 짧은 파란색 계열의 빛들은 모두 산란되어 보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파장이 긴 붉은 빛들이 달에 도달할 때까지도 산란이 일어나지 않아 이 빛이 달에 반사되어
지구에서 관측할 때 달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어제는 눈으로나 사진으로나 붉은빛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갑자기 36년 전의 1990년으로 잠시 회귀되었다가
36년 후가 될 2062년을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는 90이 훌쩍 넘어가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됨을 인지한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어제의 나처럼 소원을 빌면서 그 광경을 봐줄 것이고
어제 그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던 녀석들은 그 사실을 기억해줄 것이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제자들이 보내준 멋진 사진들 중 망원경 사진 말고 핸드폰 사진을 오늘의 대문 사진으로 골랐다.
왜냐면 과학은 전문가가 특별한 기구를 동원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이다.
핸드폰은 누구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과학에 조금씩 가까와졌으면 하는 나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고2와 고3이 된 마음이 많이 힘들 녀석들에게 할. 수. 있. 다. 자신감을 조금은 불어넣어주고 싶어서이다. 효력이 있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