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기제 발동 중

그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면야

by 태생적 오지라퍼

고양이 설이는 큰 소리가 나면 숨는다.

비상 상황으로 인지하는거다.

남편과 내가

혹은 아들과 내가

조금만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얼른 숨는다.

언쟁일때도 있고 귀가 안들려서 일 때도 있다

티비나 청소기 돌리는 소리때문에 그리고

점점 나빠지는 청력때문에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중이다.

어제는 WBC 야구 한일전에

나와 동생 부부의 박수와 탄식이 난무하니

재빨리 비어있는 남편 침대밑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숨어있었다.


내가 간절하게 응원하는 팀 경기를 잘 보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다.

따라서 올림픽이나 국제대회 시즌이 되면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회피기제가 발동하는거다.

물론 결과는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의 승리를 위해 패배요정인 내가

눈을 질끈 감는 나 나름의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어제는 피할 수가 없었다만(어차피 2등 싸움이다.)

어찌 보면 진짜 중요한 오늘 대만전은

시청을 피할 방법을 찾았다.

그 시간에 서울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리고는 가끔씩 실시간 결과 데이터를 훔쳐보면 된다.

나의 이 눈물겨운 응원이 효과가 있기를

그것을 위해 티켓을 변경하는 수수료를

기꺼이 지불했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몰라도 되니 어제처럼만 화이팅해주었음 좋겠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기차 탑승이지만

아직도 참기 힘든 것은

큰 소리의 통화 목소리와

볼륨 최대의 벨소리와 카톡 소리

그리고 습관이 되어버린듯한 기차의 연착이다.

상행선에서의 정시 운행은 거의 보기 힘들다.

이래서야 기차 출근이 가능할까 싶다만

그래도 목요일에 도전해보련다.

야구 때문에 서울로 일찍 올라가서

덕분에 오목공원 유기농 장보기도 하고

백화점 푸드코트도 돌고

시식코너 음식도 집어먹고

옥상 정원을 보며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으니

되었다.

야구만 이기면 된다.

내 회피기제형 응원이 효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슬프도다. 내 응원이 닿지 않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