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 안사주셔도 된다.
7살 차이인 막내 동생 꿈에는 부모님이
자주 등장하셨단다.
아마도 제일 막내라 못다준 사랑이 신경 쓰이셨나보다.
장녀인 나에게는 거의 안나타나셨다.
아주 가끔 한분씩 화난 표정이나 뚱한 표정으로
잠시 잠시 말도 없이 다녀가실뿐.
그런데 오늘 새벽 꿈에 두분이 꽤 오래 나타나주셨다.
심지어 대화도 나누었다.
꿈의 내용은 개꿈이 틀림없다.
욕심도 없고 그걸 살만한 여유도 없는
명품 가방이야기다. 뜬금없다.
막내 동생에게 부모님이 명품 가방을 사준다고 하셨다.
왜 인지 이유는 명확치 않은데 무언가를 아주 잘했다 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들은 대가성 선물을 많이 주곤 하셨다.
미리 약속을 하기도 하셨었다.
이번 시험 1등하면 운동화를 사준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동기부여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만
주고 받는 거래식 관계로 가는 지름길이기는 하다.
그렇게 컸더니 나도 아들 녀석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그에 해당하는 알바비를 주곤한다.
집안 내력이 이리 중요하다.
여하튼 막내 동생에게만 명품 가방을 사준다고
같이 외출을 준비하는 중이셨다.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나도 사달라고 떼를 써본다.
꿈속의 내 얼굴은 안봐도 비디오이다.
볼이 부어있고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이고
볼멘 소리로 무어라 무어라 두어 마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에게 긴긴 이야기를 조곤조곤 할만큼의 그런 대화 상태는 유지되지 않는다.
내 의견을 떨면서 이야기 하고나면
크고 굵은 목소리로 한마디로 딱 혼나고 끝이었다.
그런데 꿈에서는 오호라 내 읍소가 통했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는데 말이다.
어찌 저찌 나도 하나 명품 백을 사준다해서 신나서는 넷이서 명품숍에 함께 갔다.
꿈에서도 신이났다.
동생은 노트북까지 들어갈만한 커다란 가방을 골랐다.
(젊어서의 동생 가방 스타일이다. 지금은 아니다만)
나는 손바닥만한 앙증한 백을 골랐다.
예나 지금이나 덩치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움을 추구한다.
그런데 계산을 하러 나왔는데 아버지가 내 백이 너무 비싸다고 다른 걸로 바꿔오란다.
나는 이게 꼭 마음에 드는데 말이다.
덤으로 사준다는게 어딘가 싶다가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닌 백은 필요없다는 마음 반반이 오고가는 그 묘한 긴장감 속에서
아버지와 대치중이었는데
고양이 설이가 하필 그 순간에 내 머리를 어루만져서
꿈에서 확 깨버렸다.
얼마만에 내 꿈에 부모님이 등장하신 건데 아쉽기만 하다.
엄마 목소리를 두어 번 밖에 못들었는데 말이다.
그리고는 엄마가 나에게 남겨준 유일한 가방을 꺼내 어루만져보았다.
아들 녀석 상견례날 들고 가려했었는데
이제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고 너무 낡아버렸다.
시어머님이 물려주신 가방도 두 개 있는데
도통 들고 갈 때가 없긴하다.
엄마가 입었던 스웨이드 코트는 일년에 한번 정도 입고
엄마가 사주었던 내 유일한 밍크 코트는 올해 한번도 못입어보고 겨울을 보냈다.
이 아침 한번씩 어루만져주었다.
3월 20일이 엄마 생신날이고 26일이 엄마 기일이다.
개꿈이라도 좋다.
꿈속에서라도 안아프셨던 때의 얼굴을 뵈었으니 되었다.
수업하러 가면서 두분이 계시는 이천호국원에 다녀와야겠다.
꿈에서 보았던 그 작고 앙증맞고 이쁘던 명품백이 삼삼하게 따오르기는 하는데
중요한 것은 디자인만 생각날뿐
브랜드도 모르고
더 중요한 것은 명품백을 살만큼 내가 여유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걸 살 돈이면 해야할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딱히 명품백 그걸 들고 다닐만한 곳도 없고
그걸 잊어버릴까 전전긍긍하기도 귀찮다.
그러니 명품 가방 안사주셔도 되니
가끔씩 꿈에서라도 부모님을 만나뵐 수 있었음 그것으로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