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 공들였던 곳은 점점 낡아가더구만
결벽증은 아니다만 어느 정도 잘 정리된 공간을 선호한다.
그래서 쓸고 닦고에 열심히 매진하고 맥시멀리즘을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무언가 많으면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스타일인지도 대충 정확하게 짐작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꼭 집이 아니어도 사무실의 책상 위만 보아도
절대 숨겨지지 않는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목요일 2,3,4 교시를 하고 점심을 먹고 5,6,7 교시 수업을 하는 고등학교에는 공식적인 내 자리가 있다만
나는 그곳을 왔다갔다하느니 수업하는 3층 과학실에 상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쉬는 시간에 이동 수업으로 오고가는 학생들을 맞이하기도 해야 하고
그 하루 동안의 수업 준비도 완벽하게 해두어야 하고
실험 수업의 경우는 더더욱 준비할 것들이 많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들도 많으니 굳이
교무실 한 구석에 가서 있다가 올 필요가 1도 없다.
화장실만 다녀오고 점심도 이곳에서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하려 마음먹었다.
급식이 지금껏 내가 먹어봤던 학교 중 최하의 퀄리티이다.(말은 하지 않았다만)
그리고 그 맛없는 것을 먹는 시간도 사실 아깝다.
과학실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천천이 수업 준비도 하고 계획도 세우는 한 시간이 훨씬 더 좋다.
그리고는 남는 시간에는 본성에 이끌려
내 학교도 아닌데 과학실 정리에 들어간다.
너무 많이 표가 나게 정리를 하면 과학실무사님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
(올해가 정년 전 마지막해라 들었다.)
표시가 안나게 살짝 아주 사알짝 정리에 들어간다.
한쪽 장 아래에는 내 수업 관련 물건들을 모아둔다.
일반적인 학교 실험실은 멋지게 관리가 되기 힘들다.
실험을 할 때만 사용하곤 하기 때문이다.
상주인력이 없는 공간은 표시가 나기 마련이고
때빼고 광내고 하는 스타일의 관리자가 있지 않는 한
버림받고 죽은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지금껏 내가 디자인해서 만든 마지막 두 학교의 과학실은 빛나는 공간이었다.
오늘 대문 사진 속의 반짝이던 그 공간이 지금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지만 말이다.
버릴 것을 버리고 붙박이장에 차곡차곡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점심을 먹고 나서 이빨도 닦고 나서 남은 자투리 시간만 활용하려 한다.
올 한해 아마도 내 손길이 닿으면 이 공간은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화될 것임을 잘 안다.
이전 학교에서도 다 그랬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교무부장으로 바쁜 후배가 틈날 때마다
커피도 간식도 날라다 주고는
커피포트까지 챙겨다 주었으니 나는 서울 한 복판에 나만의 번듯한 작업실을 마련했다 생각하련다.
창으로 제법 햇살도 잘 들어오더라.
다음 주 분광기로 스펙트럼 분석 실험을 하는데 태양관측 안경도 활용해보고 태양광도 한번 살펴보려 한다.
스펙트럼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경험은
아마도 그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테니 말이다.
학생들이 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
정리만 잘 하면 되는데 그것이 뭐가 힘들다고 안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만.
또 그랬듯이 열심히 쓸고 닦는 나의 본성이 발휘되는 목요일이 될 것만 같다.
괜찮다.
그 공간의 주인이 나라고 혼자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