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라퍼의 사례를 중심으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도 많은 오지라퍼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엄청 많았음을 여러차례 이야기하였다.
그 관심이 때로는 배신으로 다가온 경우에는
당연히 하늘이 무너져버릴만큼 절망하기도 했었고
나의 관심이 상대의 무관심으로 답이 올 경우는
마음을 다치기도 했었고
내 관심보다 더 큰 상대의 관심 표현에는
어느때는 엄청 고마웠고
또 어느 때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마 그 차이는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그 당시 컨디션이나 입장의 차이였던 것 같다.
따라서 모든 것이 내 문제였을 확률이 더 많았던 거다.
나이가 들면서 가급적 사람에 대한 관심을 더 이상 갖지 말자가 모토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는
잘 안다만
그만큼 힘들고 피곤한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주 우연히 나와 여러 가지 일을 같이하는 그런
감사한 분들을 아주 가끔 만나게 되었는데
오늘 그 중 한 명이 내 꿈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일년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연구부장을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방과후학교 업무도 나에게 뒤집어 씌워졌던
교사 생활 중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그 해였다.
갑자기 주 5일제가 되면서 토요일 등교가 없어지고
그랬더니 토요일에 아직 근무하는 부모님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토요일 방과후학교 프로그램까지 신설하라고
느닷없는 업무가 추가되고 추가되던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다.
아무리 내가 일이 취미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업무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하교 후 이루어지므로
그 프로그램 운영을 도와줄 매니저가 필요했는데
지금처럼 당근 등을 이용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이 활발하지 않던 때였고
수당도 엄청 작아서 선뜻 누군가가 하려 하지 않았었다.
일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일이 생기면 학생들이 대상이므로
큰 일이 될 수도 있어서 더더욱 선호하지 않았었다.
사람을 구하다 구하다 못해서 나는 옛 제자들에게
주변에 누구 있으면 추천 바란다고 문자를 사방에 돌려놓았었다.
그때 제자 한 명이 군대다녀온 자기 친척이 있다고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오늘 꿈에 나타난 그였다.
내가 운이 좋았다.
그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방과후 업무를
엑셀을 이용해서 잘 정리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항상 웃는 얼굴로 일을 수행하였고
즉답형 스타일이라 나는 엄청 좋았지만
젊은 그의 앞날이 조금은 걱정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가 없었으면 그 해 나는 분명 쓰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해부터 학교 교무일을 도와주는 행정지원사를 쓸수 있게 되었고
그를 잘 지켜보았던 나와 교감 선생님 추천으로 교무업무를 도와주는 지원사가 되었고
그 직종이 얼마지나고서 공무직으로 통합되어서 이제는 정년까지 보장되었으니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할까?
좋은 운명이었다고 그도 생각해주길 바란다만.
그 뒤로는 학교 이곳 저곳의 힘든 업무를 모두 해결하는 슈퍼맨이 되었고
나의 여러 가지 어려운 업무도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도와주곤 했었다. 물론 수당은 아주 적은 금액이다만.
그리고 마지막 학교에서 또 엄청 일을 잘하는
또다른 행운의 실무사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어렵고 버거운 일이 있으면 수호신처럼
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나와 함께 맛난 서울시내 한 복판 을지로에서의 점심을 먹곤 하는 밥친구이기도 했다.
정년퇴직 후 더 이상 나의 일이 없고
(함께 할 일이 있어야는데 그래야 그 핑계로 수당도 드리고 밥도 먹는데)
웬만한 것은 마지막 학교 실무사님과 의논하고 하다보니 연락이 뜸해졌고
언젠가 정년퇴직전에 밥한번 먹어야지 싶은 마음만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늘 새벽 꿈에 나타나서 여자를 데리고 인사왔다고 결혼을 한다고 했고
밥을 먹으면서 살펴보니 꽤 단단한 심지의 여성이어서 안심을 하고 깼다.
실제 일어난 만남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그는 나의 아들 녀석과 동갑이었다.
둘 다 결혼이 늦었다.
출근 시간이 되면 오랜만에 톡을 넣어봐야겠다.
좋은 여자가 생겨서 결혼에 이르렀는지도 궁금하고(그렇담 연락을 했을텐데)
그 사이에 편찮으셨던 어머님은 괜찮으신지도 물어보고
무엇을 먹던지 맛나다고 잘 먹었던 성실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수업 6시간과 서울 왕복 출퇴근으로 분명 힘들었을텐데
오랜만에 내 꿈에 등장한 무언가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고(그렇담 내가 신기가 있다는건데)
아직 그는 내 관심리스트에 남아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오랫만에 톡을 했더니 그도 내 생각을 했단다.
올해 이동해온 어느 선생님을 보면서.
오지라퍼 한 명이 또 등장했나보다.
결혼은 계획이 없다해서 맛난 밥이나 먹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