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스며든 고양이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조건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밥주기, 털 정리, 배변 청소하기, 기타 등등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했다.
본인이 모두 다 처리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었다.
그런데 그 때도 아들 녀석은 이미 2주일에 한번씩은 3박 4일 정도의 출장이 있을때였다.
출장가는 날은 어찌 하냐고 물었더니
고양이 호텔이 맡기고 가면 되니 걱정말라했었다.
그 대신 자신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고양이 호텔에서 찾아와 주기만 해달라고
찾아올 때는 호텔에서 고양이를 이동형 장치에 넣어줄거라고 했다.
내가 고양이를 만지지 못하니 말이다.
처음 고양이 호텔에 찾으러 간 날.
집안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방치되어 있었고(그렇게 보였었다.)
당시 어린 고양이 였던 설이는 겁먹은 눈동자로 케이지 안에서 부들거리고 있었다.(그렇게 보였었다.)
그 날 자동차 운전석 옆 자리에 케이지를 놓고 집으로 데려오면서
다시는 고양이 호텔에 보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아들 녀석이 출근을 하면서
고양이는 작은 방에 넣어서 물과 먹을 것을 주고
다시 아들이 퇴근을 하면 문을 열어주는 그런 시스템이 얼마인가는 계속 되었었고
(나는 그 조그마한 고양이가 엄청 무서웠다. 눈빛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 방은 절대 출입을 허라하지 않았었다.
그 마음이 녹아내린 것은 설이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목에다 넥크를 차고 비틀거리면서 들어온 그 날이었다.
마취가 덜 깨어서 비틀거리면서도 아들과 나에게 걸어오다 넘어지고 걸어오다 넘어지고 했었다.
눈물이 살짝 났고 그 뒤로 나는 고양이 설이에게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마침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그 즈음 내 마음이 최고조로 허약했던 시기였다.
그리 오래 아프셔서 침대에 누워만 계셨었지만
정작 돌아가셨다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었다.
벌써 6년전 이맘때의 일이다.
그래도 한동안 설이의 배변 처리는 아들 몫이었는데
아들이 독립하고 나니 오롯이 나의 몫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아들 녀석처럼 즐겁게 놀아주는 일은
잘 못한다만.
혼자 사는 원룸형 오피스텔에 고양이를 데려다 놓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들 녀석이 결혼도 하고 안정이 된다면 모를까?
(그런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만 설이를 못보는 것은 아직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요즈음은 고양이의 모든 일이
고양이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일이 온전히 내 몫이 당연히 되었고
가끔 집에 오는 아들 녀석은 고양이 알러지가 발동하는지 재채기와 얼굴 홍조가 일어난다.
세상에나.
자기로부터 시작된 고양이와의 동행인데 말이다.
다행히 학기 중에 같이 있는 막내 동생 부부는 고양이 알러지가 없는 듯 하고
계속 설이에게 친밀감을 표현해보는 중이나
아직은 관찰의 대상이기는 하고
얼마 전 발톱으로 제부의 손을 단번에 할퀴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나 불이 켜진 남편방 틈을 보고 방문을 긁어대고
게으름을 피워보려는 나를 깨워 아침 츄르를 기어이 얻어먹는
문제해결력과 성실성을 보여주었다.
어제 태국 출장 중인 아들에게 설이가 내 침대에서 퍼지게 자고 있는 사진을 보내주었더니
<팔자 편하네요.> 라고 답이 왔다.
자기는 엄청 덥고 바쁘다면서.
그 팔자 편한 고양이를 나에게 덥썩 맡긴 것은 자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처음에는 내 일이 아니었다만
결국에는 내 일이 되어버리는 것들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래저래 일복은 참으로 많은 인생이다만
아직도 나는 일을 찾고 기다리는 중이다.
<죽기 전 날까지 일하다가 죽고 싶다.>
이 말은 친정 아버지가 늘상 하셨던 말인데
지금은 아픈 남편이 입에 달고 있고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고 있다. 그만했으면 좋겠다만)
나는 입으로 말은 안한다만 마음 속에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생각이다.
아버지의 그 마음을 이제는 백퍼 이해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오늘 대문 사진은 후배가 스타벅스 어느 지점에서 팔고 있다는 봄 신상품을 찍어 보내준 것이다.
설이랑 꼭 닮았다면서.
상품 만드는 사람이 설이 사진을 보았나보다.
꼭 닮은 거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