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피를 봤다.

오늘 하루 조심하련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부터 피를 봤다.

하루를 조심 조심 움직여야겠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런 것에 휘둘린다니 하겠지만

징크스나 예감이나 조짐 이런 것들이

일상생활을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왕 피를 본 것

오늘 하루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다.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다.

미뤄왔던 염색과 파마 혹은 머리 자르기와 정리 기타 전문적인 영역을 총동원해서

죽어가는 내 헤어스타일을 살리는 날이다.

흰머리는 염색으로 커버가 된다지만 앞머리의 점점 비어가는 숱은 어찌해야할지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

지금 현재 내 상황에서 나를 조금은 덜 늙어보이고 생기있게 해주는 일은 헤어스타일이 유일하다.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기적과도 같은 기회를 부여받았는데

집에서 산책하던 대로 하고 나설수는 없는 법이다.

상황에 맞게 옷과 헤어를 하는 일은 내 평생 열심히 지켜왔던 신조이고 자존심이다.

그래서 오늘 오후의 변신할 내가 기대되기도 하고(걱정도 된다만 기술력의 힘을 믿는다.)

남편 점심을 못챙겨주니 그것까지 미리 해놔야겠다고

저녁에도 다녀와서 힘이 들지 모르니 저녁까지도 미리 세팅해놔야겠다고 마음이 서둘러졌는지 모르겠다.

서두르면 사단이 나기 마련이다.


아침은 버섯덮밥에 청국장이었고,

점심은 달걀볶음밥 볶아서 해물 순두부 끓여놓고 가려고 새벽 배송을 받았었다.

순두부가 문제였다.

새로운 종류의 순두부를 주문했는데(할인 중이었다.) 입구가 쇠고리로 꽁꽁 뭉쳐쳐 있었다.

그것을 가위로 자르려다가 몇 번 잘 안되길래 힘껏 힘을 주었는데

고리 앞 부분과 함께 순두부 비닐팩을 들고 있던

내 왼손 둘째 손가락도 베어버린거다.

세상에 오래 써서 이미 무뎌진 그 가위에 베이다니...

물론 심한 것은 아니다만...

베인 손가락 피부가 연약한 것이냐 아니면

힘이 과하게 들어간 내 오른손의 능력을 칭찬해야 하는 것이냐?

아직 손의 근력이 남아있음을 즐거워해야하는 것이냐? 얼른 밴드를 감아두었다만 기분은 나쁘다.


그리고는 저녁을 위해서 콩나물 꼭지를 따고

(1/3은 콩나물밥용 나머지는 콩나물국용이다.)

아침 설거지를 치고 있었는데 슬몃 뒤를 돌아보니

피가 뚝뚝 떨어져있는게 보이고 남편이 안보인다.

분명 아침 먹고 항암약을 먹는 것까지 보고 설거지를 시작했는데 말이다.

아차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가 손을 할퀸 것이다.

아까부터 자꾸 고양이를 이쁘다고 만져주려고 시도하는 것을 봤는데(설이는 아직 질색중이다.)

그리고 한참전부터 고양이한테 할퀴면 파상풍 올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된 셈이다.

나보다 두 배는 많은 피가 난 것을 보니 상처가 아주 조금인 것은 아니다.

폭풍 잔소리를 해대었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아들 녀석이 남편을

꼭 빼다 박았다만 오늘 아침은 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에너지를 아껴서 살을 찌우고 암세포와 싸워도 모자랄 판에

아까운 혈액을 잃어버리다니 속이 마구 상한다.

그래놓고도 고양이 설이는 평온한 모습이다.

당연하다.

설이 잘못이 아니다.

자꾸 만지니 폭력이나 위협으로 받아들인게 분명하다.

그리고 설이도 요새 사춘기 아니면 갱년기 중이다.

설이 사랑 아들 녀석이 매일 집으로 퇴근하지 않는 시스템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자기가 제일 좋아라하는 상자 안에 들어가서 숨어있고 그 좋아하던 츄르도 거부중이다.

아들 녀석이 주면 먹더구만.

아침부터 둘다 피를 보고 밴드를 붙였다.

액땜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련다.

(남편은 면도하다가도 피를 봤댄다. 심상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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