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 파마
고민을 했었다.
전 국민에게 지급된 국민생활지원금을 어디에 써야
잘 썼다는 느낌이 들까하고...
돈의 액수도 물론이지만 나라에서 경제와 소비를 살리겠다는 큰 뜻을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했었다.
그냥 먹거리 반찬으로 쓰기에는 의미를 담을 수 없을 듯 하여 말이다.
후보는 두 가지였다.
새 학기, 새 학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에서의 내 삶과 첫 인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 돈의 효과를 오래토록 기억할 것 같았다.
일단 첫 번째 후보는 10년이 다되어가는 안경을 바꾸는 일이다.
안경테도 낡고 금속이 벗겨지려 하는데 그것보다는 닦아도 닦아도 뿌옇게 보이는 렌즈가 더 문제였다.
시력이 나빠지고 노안이 심해져서가 주 원인이겠으나 오래된 렌즈의 성능을 의심하곤 했다.
아무리 안경 닦는 천으로 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가 않는 듯 했고
사실 컴퓨터 작업은 안경을 벗고 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했다.
아직 돋보기나 다촛점렌즈를 쓰지 않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어려서부터 크기만 하고 성능은 좋지 않으면서 예민하기만 한 눈은
안경 렌즈의 도수를 바꾸면 적응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심한 어지럼증이 생기곤 했었다.
그래서 내 시력을 기준으로 훨씬 낮은 도수를 써야 어지럽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또렷하게 잘 보이는 것을 포기하곤 했었다.
이런 사람은 다촛점렌즈 적응은 더 쉽지 않다 했다.
참 가지가지 예민한 피곤하고 남루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제쯤은 한번 안경을 총정비하여 앞으로의 10년을 대비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물론 지원금 예산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그래도 안경은 연말정산 특별항목에 포함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하나의 후보는 파마를 하는 것이다.
작년 3월쯤 새학기 맞이 파마를 하고는 1년이 지나도록 파마 없이 생머리로 염색과 커트만 하고 버텨왔었다.
한때는 거의 분기별로 파마를 했었고
앞머리의 볼륨감이 없어지면 내 자신감도 동반하여 사라지는 묘한 컨디션을 경험하기도 했었다.
파마와 염색은 예산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비싼 염색은 염색약을 발라고 두피가 하나도 따갑지 않으며
비싼 파마는 파마약 냄새가 지독하지 않고 파마한 표시가 뚜렷하게 나지 않으며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따라서 나 어제 미용실 다녀왔어요라는 표시를 나타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아직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살리는 탈색과 염색등은 시간을 미루기로 마음먹었었다.
3년후에는 저절로 그 라인을 탈 것이다만...
두 가지 후보군 중에 어느 것을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오늘 헤어스타일 정비에 지원금을 사용했다.
안경은 그럼 포기한 것이냐? 아니다.
안경 혹은 파마로 부제목을 달지 않은 이유이다.
오늘 미용실을 함께 간 친구에게 가장 싸고 실속 있게 안경을 바꿀 수 있는 곳을 추천받았다.
결국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에는 고민거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시기도 있는 법이다.
나름 자연스러운 파마와 염색과 커트에 만족하면서 집에 돌아왔으나
남편은 머리를 한 거냐고 물어본다.
그럼 도대체 왕복 네 시간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이겠냐?
하긴 안경을 바꾸고 와도 말을 안 하면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남편의 센스와 관찰력이 딱 그렇다.
표시는 안 나더라도(친구랑 막내 동생은 잘만 알아차렸다. 사진을 보고서 친구는 세련된 대학교 총장 같다했고 동생은 훨씬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고 했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라는것은 안다만.)
알찬 소비를 했더니 나는 기운이 펄펄 나서
내일과 모레 중학생 대상의 특강 PPT 준비에 돌입한다.
돈을 쓰는 일은 이렇게 때로는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