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만
바쁘게 일하는 날은 돈을 쓸 시간이 없다.
기껏해야 밥 먹는데 쓰는 돈이 대부분일뿐.
그런데 오늘 하루 쉼이 있는 수요일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 종일 돈을 썼다.
물론 내 봄맞이 셀프 여행을 위한 <불꽃야구> 직관 관련 돈을 제외하고 말이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서 SNS를 둘러보다가
여름용 양말 세트를 구매했다.
여름이라고 맨발로 강의 나가기는 거시기해서
얇은 양말이 필요하긴 했었다.
여름 양말이라고 특정한 양말을 산 기억은 별로 없다.
발목까지 올라오진 않고 덧버선처럼 생긴 양말은
내 발이 크고 발가락이 길어서 자꾸 벗겨지려 하거나 발가락이 너무 오므라들어서 평소 애용하지 않는다.
오늘 구매한 양말은 심플한 색인데 발목 조임 고무줄 있는 부분이 여유가 있어서
길이도 조절되고 디자인도 나름 괜찮아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모른다.
인터넷 쇼핑 물품은 받아봐야 알 수 있다.
마침 오른쪽 양말 발목 조임 고무줄 닿는 부분에
접촉성 피부염이 나타난 곳이 있어서 더욱 끌렸었나보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점심 이후는 온갖 종류의 운동화에 홀라당해서
구매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초록색, 분홍색, 흰색, 은색 갖가지 색과 형태의 운동화가 그리 눈에 들어왔다.
보통 이렇게 많은 종류에 한번에 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인데
여름용 신발이 뭐가 있을까 신발장을 열어보았더니
마땅한 것은 갈색의 샌들과 운동화의 중간 버전 하나와
흰색 운동화인데 뒤가 터진 슬리퍼 형태 딱 두 개였다.
둘 다 새것도 아닌데다가 디자인도 몇 년 되어 구린내가 난다.
이사오면서 나머지는 다 버렸다.
갑자기 신발장을 열어본 이후로
운동화만 눈에 띄는 희한한 SNS 쇼핑 알고리즘에
퐁당 빠져버렸다가 간신히 마음을 추스렸다.
발이 크고 건강하고 앞 볼이 극한으로 넓고
언제 넷째 발가락에 숨어 있는 티눈이 도질지 모르는
내 암담한 상황의 발을 받아줄 중요한 신발을
신어보지도 않고 산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아니냐?
내일 시간이 되면 백화점에 들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학교에 들러서 잠깐 빌려써볼까했던
애증의 미니오븐이 대여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총알 배송을 이용하여 하나를 급구매한다.
키링 만들기 활동을 2학기에도 진행해야할지 모르고
키링 만들기에 사용하지 않으면 이사하는 아들 녀석에게 빵이라도 구워먹으라고 넘겨주면 될 것 같다고 구매에 정당성을 부여해본다.
월요일 강의는 3시간 연속이고 10주차 강의라
5월 11일이면 종강인데
그 이전에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줘야하지 않겠나 싶어서이다.
이번 학기 내돈내산 준비물을 저번 학기에 비해서 최소로 줄인다고 줄였다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돈내산 준비물을 제공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어쩌겠나. 이것도 내 스타일이고 팔자인 것을 말이다.
쉬는 날.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고 했더니
자꾸 자꾸 돈 쓸 일만 생긴다.
먹을거라고는 딸기 한 팩 산 것 밖에 없는데 말이다.
저녁은 동생이 배달시킨 비빔밥을 나눠먹었다.
나는 맛나기만 한 소불고기가 동생은 영 아니라고 한다.
냉장고에는 만들어둔 어묵탕, 야채 위주의 샤브샤브, 콩불이 이미 있는데 말이다.
일주일만에 산책 다녀온 아파트 뒤편 저수지와 산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파릇파릇하다.
산책에는 돈이 한푼도 들지 않았다.
저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스위스냐고 답변이 왔다.
물론 조금의 과장은 포함되어 있다만.
톡에 쓰는 기분 좋은 말들은 돈이 들어가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