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교사의 수업 이야기 186

계획대로 실험이 다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 오전은 기운이 남아돈다.

가끔 이런 각성 상태의 날이 있다.

그럴 때 일은 몰아서 하는 것이 장땡이다.

언제 각성 상태에서 에너지 준위 제로인 상태로 급변할지 알 수 없다.

60대의 몸은 그러하다.

밤새 안녕이고 다치는 건 순간이다.


다음 주 목요일 고등학교 실험 수업을 위한 강의 자료를 만든다.

교과서에는 간단한 탐구로 나와있다만

규산염 사면체는 그리 간단한 내용은 아니고

(화학 부분의 이온 결합, 공유 결합등을

모두 이해해야만 가능한데

화학부분에서 아직 그 내용을 다루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교과서는 통합과학인데 실제 학교에서는

분절된 과학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화학에서 어떻게 설명하실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기본만 건드리겠다고 마음먹는다.)

일단 공간 지각력과 입체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중간고사 후 첫 시간이니 릴렉스하게 말이다.

그리고는 2층 과학실 앞 복도에 전시되어 있던

암석과 광물 표본을 사진찍어서

디지털 화면에 저장하는 과정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AI 활용과 약간의 위트를 포함한 과정인데 그렇게 해서라도 암석과 광물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진다면

내가 의도한 소정의 성과를 확보하는 셈이다.

PPT 자료를 만들어야만 내 머릿속도 정리가 되니

6시간짜리 통합과학 수업에 너무 많은 내 에너지를 사용하나 싶다만

늘상 그랬듯이 나는 강의에 있어서만은

최고를 추구한다.


월요일 대학 강의는 현장 체험인데 비예보가 있어서

비가 오는 경우는 활동을 순연하고 강의로 대체하려고 마음먹는다.

어렵사리 나갔는데 비만 맞고 오면 얻을게 반으로 준다.

몇주전 만들어두었던 원소기호 키링 필름을 집으로 가져와서

우여곡절 끝에 개인 구입한 미니오븐으로 구웠는데

작년까지 했던 미니오븐이 아니어서인지)같은 메이커 것으로 일부러 구입했다만)

열이 균질하게 전달되지 않고

중간에 안전을 위해서 가열이 중단되는 시간이 있는 관계로

제대로 되지 않아 중간 부분이 볼록하게 올라와서 속된말로 폭망했다.

어쩌겠나. 이런 것이 실험이다.

다음 시간에 미니오븐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시연으로 보여주고

왜 균질하게 수축하지 않았는지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실험이 그냥 한번에 쓱 잘 이루어진면 왜 과학 실험이 어렵겠는가?

망치는 실험이 더 많은 법이다.

그나저나 저 키링 굽기를 위해 나는

미니오븐도 사고 알루미늄 호일도 사고

내 금쪽같은 시간도 오늘 한 시간이나 투여했는데 결과가 못 받쳐주니 아쉽기만 하다.

아마도 저 미니오븐은 업그레이드 버전이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업체에서는 특단의 조처를 한 모양인데

실험용으로 쓰기에는 꽝이 된 셈인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작년 우리 연구팀의 연구 내용인

서울시교육청 학교 탄소중립 실천이

일선 학교에 자리잡고 있는 과정을 전달받아

몹시 흐뭇하다.

그 흐뭇함으로 키링 실험 실패의 쓰라림을 떼워보련다.

더하기 빼기 제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직 오전인데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 기력이 쌩쌩하다.

신기하도다. 아침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아침부터 식욕이 돋아서 양배추, 두부 으깨고 계란물 올려서 찜처럼 먹었더니

(동생이 안 먹어서 동생 것까지 먹었다.)

에너지 뿜뿜인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아는 일보다 백만배는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이 나만 억까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리 뛰어나고 특별한 사람은 아닌데

세상이 나에게 집중할 일이 뭐가 있겠나.

과학적으로 본다면 고온 혹은 고압 혹은 고밀도인

한 점에 주변의 힘이 집중하게 되어있다.

나는 과학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그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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