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 에너자이저였다.

내일 몫까지 당겨쓴 것은 아니겠지?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일찍부터 쉬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날을 보냈다.

오전에 술술 일이 처리되어서

오후에는 기력이 떨어질까했는데 아니다.

오후에도 이것저것 앞에 닥친 일들을 서슴없이 처리했다.

오늘처럼만 일을 해낸다면 어느 현역 못지않다고 자부할 만큼이었다.

나의 전성기때를 기억나게 해주는 날이었다.


오후 일을 마치고서는 오랜만에 조치원 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지난번 15,000원 정도의 현금을 잊어버린 후 처음이다.

그때의 어처구니없음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장소를 마냥 피할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겠냐.

트라우마로 자리잡기 전에 이겨내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장날이라 사람도 많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나들이하는 마음으로다가 말이다.

내일 오랜만에 남편이 집에 오니

(시어머님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내려왔다.

조금 마음이 놓인 효자 남편이 집에 다니러 오는 거다.)

남편 맞춤용 반찬을 구비하러 가야겠다는 것이

늦은 오후 산책의 실질적인 목표였다.

물론 지난번 현금을 잃어버린 그 길로는 절대 걸어가지 않았다.

퇴퇴퇴는 안했다만 재수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나의 단골 반찬가게에서 남편이 좋아라하는 감자샐러드, 오이지무침, 톳나물졸임

그리고 파김치를 사고(파김치는 내가 더 좋아라한다.)

봄나물 특선이라는 엄나무순 데친 것도 사고

(두릅은 못 먹었다만 봄이 다 가기 전에 이거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서)

잔멸치가 들어있는 미니김밥까지 사서

(잔멸치는 먹기에 부담 없다. 큰 멸치는 약간 비려서 싫어한다.)

산책하는데 딱 좋은 정도의 날씨와 거리인

버스 한 정거장을 걸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살짜쿵 더워서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닌

올해 첫 번째 날이다.

냉장고에 밑반찬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다음 주 강의 자료를 완비하고

오전, 오후 두 번의 산책을 하고 났더니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어졌는데

기말고사 문항 출제나 미리 할까 싶다.

사실 강의를 하면서 문항 출제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수업과 평가는 일체이기 때문이다.

언제 기력이 똑 떨어지고 컨디션이 나빠질지 알 수 없고 시어머님 건강도 답보할 수 없으니

할 수 있을 때 달려두는게 맞다.

간식으로 믹스커피에 에이스를 담가 먹어서인가?

흔한 초저녁 잠도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초인적인 에너지가 발휘되는 하루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만.

내일 몫의 에너지까지 오늘 몰빵한 것은 아니겠지 우려도 된다만.

늦은 오후 산책 끝에 반달도 봤으니 오늘 몫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충분하다.


(어째 아침부터 배가 고프더라니.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계셨다면

실컷 자고 일어나서

한게 뭐 있다고 배가 고프냐고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는 그런 사람은 뭐냐고 하셨을 것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하루가 든든했나보다.

그런데 그런 일어나자마자 배고픔을 느끼는 날

나에게도 그리 흔한 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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