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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Jun 01.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50

음식에도 꼰대정신이 있다.

안양천 근처 학교 컨설팅은 유쾌한 시간이었다. 

젊고(제일 부럽다) 

금요일 오후에도 남아서 컨설팅을 받고 

실험을 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멋진 후배 과학선생님들과의 만남이었다.

과학고와 과학중점고등학교는 일반학교보다는 과학에 특화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이런 곳에 가면 늘상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활동에 대한 자료나 운영해본 팁 보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위로와 믿음과 미래과학교육에 대한 안심이 더 컸다.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유쾌하게 선배를 챙겨주던 오래알고 지내던 후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컨설팅 시간도 즐거웠는데 끝나고 맛있는 이른 저녁도 대접해주었다.

불편한 사람들과는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못느끼고 그 시간조차 즐겁지 않은데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는 무엇을 먹어도 맛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진리일 것이다.

학교 근처에 있는 깨끗한 월남쌈집. 월남쌈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심지어 고기는 직접 구어먹는데 그것도 무제한이다. 

다섯 종류의 소스도 맛났고 다양하게 썰어둔 야채도 싱싱했고 얇게 저며 쉽게 구워지는 고기도 좋았다. 

무제한이었지만 여자 네 명이 그리 많이 먹을 수는 없다. 

두 번 리필을 하고 쌀국수를 먹고 나니 살짝 걱정이 된다. 

남는 장사일까 싶은거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많이 맛있게 먹었더니 힘이 나는게 확실하다, 


작년 학기말. 

마지막 담임이겠다 싶어서 우리반 마지막 단합대회를 무제한 고기집에서 진행했었다. 

학생들과 이런 식당을 가면 여러모로 미안하다. 

미리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두었고 손님들이 별로 없는 시간에 오픈런을 하긴했지만 

한창 성장의 시기라 많이 먹는데다가 오래 먹고 별의 별 이야기가 다 오고가면서 시끄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날 이후 우리반 아이들은 자랑거리가 하나 생긴 듯 했다.

“우리 반은 고기집에도 갔었다” 하는 자랑을 다른 반에게 하고 다녔다.

아뿔싸.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의 생각을 잠시 못했다.

배구대회 1등반 상금에 내 사비를 보태서 먹은 거지만

다른 반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 “우리반은 왜 안가요” 하면 조금은 기분이 안좋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동학년 담임교사들 사이에는 약간의 불문율이 있다. 너무 튀지 않는 것.

학급 활동을 할 때, 외부 활동의 간식, 체육대회 음료나 반 티 등을 준비할 때 

학년별로는 비슷한 수준과 결을 맞추는 일이다.

어려서는 그것을 몰랐고(내 생각이 너무도 소중할때였다.)

지금은 잘 알고 있으나 대충이나 대강 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음식에 대한 욕심이나 수업에 대한 욕심은 비슷한 모양이다.

나는 양보다는 질을, 가급적 고퀄리티를 그리고 새로운 것을 선호한다.

사람 바뀌는 거 쉽지 않다. 늙을수록 더 안 바뀐다. 

그것을 누구는 고집이라 하고 누군가는 꼰대 정신이라고 하는걸거다.

<추신: 어제는 먹느라 정신없어서 월남쌈과 쌀국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위의 사진은 얼마전 2학년부 협의회를 가서 역시 새롭고 맛있는 음식에 도전했을때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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