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기만 했다.
인생이 운명이라면 그 중 절반은 타이밍일 것이다.
딱 그 타이밍에 내 옆을 지나간다던가
내 앞에 있다던가 생각이 난다던가
그런걸 운명이라고 퉁치거나 포장하거나
아니면 회피기제로 삼거나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대학교 2~4학년을 돌이켜보니
나는 뭐했었나 싶다.
그 흔한 미팅도 안하고(주선은 꽤 했었는데)
그렇다고 공부에만 매달린 것도 아니고(딱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만 했다.)
아르바이트는 가끔 했고
(YMCA 에서 하는 동아리 지도활동은
거의 열정페이 였던것 같고
가끔 종로 근처 맛집에서 밥은 사주었다.
라디오 사연 응모는 상품을 주로 받았던것 같고
그 시대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극히 제한적이었다.)
나는 도대체 그 황금같은 시기에 뭘 한거냐?
내가 첫사랑이라고 명명한 그 친구를 좋아라하는
그 마음만 차곡차곡 쌓아갔던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금사빠가 아니니 소개팅이나 미팅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성공 확률이 거의 없었고
그때 당시에도 시대를 앞서갔는지
자만추를 기대했었으니 현실 감각 부족이다.
그러니 남자를 보는 수준은 딱 독재자 스타일의
친정 아버지가 기준이었던 셈이다.
친정 아버지와 반대인 남자를 선호했다.
내 의견을 들어줄 줄 알고
(항상 니 생각은 어때를 물어봐주었다.)
말을 딱 자르지 않고
(일단 잘 들어주었다. 말 자르기는 내 특기이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공부를 월등히 잘했고
(나는 솔직히 성적과 학벌에 취약하다.)
갈등 상황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주었으며
잘 생긴건 아닌데(그렇다고 절대 못생긴것은 아니다.)
키가 크고 말랐다.
그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딱 하나였다.
옷을 입는 감각이 없었다.
체크 무늬 상의에 체크 바지라니.
그러나 그것쯤은 눈을 질끈 감을 수 있었다.
나의 오랜 짝사랑 기간이었다.
자주 그의 옆을 단지 지나다니기만 했다.
결정적인 타이밍을 엿보았으나
그 순간이 운명처럼 찾아올것을 기대했으나
어긋나기만 했다.
기대만 해서는 상상만 해서는 안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