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약간은 상관이 있다.
명칭이 근로자의 날이던가 노동절이라던가
그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겠나.
나에게는 적어도 차이가 없었다.
작년 정년 퇴직이전에 5월 1일은 그냥 출근하는 날이었고
무상급식 이후로는 급식을 주지 않는 날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퇴직한 작년 이후로 무언가 교직 사회에도 바뀌는 것이 엄청 많다.
담임이나 부장 수당도 올랐고
(너무 작기는 했었다. 그 사이에)
그 부럽기만 했던 5월 1일이 공휴일이 되어서 학교도 쉬게 되었고(올해부터이다만)
수학여행이나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고(다시 살아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교사들에 대한 다양한 민원이 SNS를 점령하고 있다.
(답글을 달기에는 너무도 민망한 것들이 많아서 꾹 참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대한 내용은 모 개그맨의 유튜브에서 꼭 집어주고 있지만
초, 중, 고에 대한 부분은 그렇게 해소도 불가능하다.
공교육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애쓰는 선생님들만 근로자가 아니고 노동자가 아니라고 했던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만
공휴일이 되고 보니 오늘 학교가 왜 쉬는거냐는 민원이 올라온다고 한다.
자기는 돈벌러 가야하는데 자녀 밥은 누가 줘야하는 거냐고.
어쩌란 말이냐?
학교는 이제 완전히 보육으로 목적이 바뀐 듯하다.
5월 1일이 무언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해가 있다.
바로 결혼하던 해이다.
결혼식이 5월 2일이었으니 당연히 그랬다.
그런데 그날도 나는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고
석사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더 신경에 쓰였었고
내가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 수 있을 것 같은
핑크빛 그림이 그려지지도 않았고
아마 나처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던 사람도
별로 없을 듯 했다만
그래도 착하게 순탄하게는 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재미는 그때도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은 했었다만 무엇을 하던지 생각 그 이상이다.)
지금 지나고 보니 그때 그 마냥 행복하지만 않았던 조짐이 맞았던 것인가 싶다.
그런 생각은 우리 엄마도 하셨던 것 같다.
썩 내키지 않는 혼사였던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셨을테지만(나에게 말을 하지는 않으셨다만)
딸이 4명이나 있고 결혼을 시키는 것이 부모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계셨을테니
큰 딸인 나의 결혼을 엎을만큼 자신감이 있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 시대에 결혼을 엎는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일이었다.
지금 시대라면 나라도 엎었을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아들 녀석 하나를 얻었으니
이 또한 내 몫의 시련이고 고난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미래를 알지 못하고 사는 삶이 그나마 나은 셈이다.
인생 2회차의 즐거움을 나는 믿지 않는다.
모르고 맞는 주사가 덜 아픈 법이고
모르고 맞이하는 언덕길 운전이 덜 무서운 법이다.
(과거 오토매틱 운전이 아니었을 때 수동으로 재빨리 발을 떼서 올라가야만하는 언덕길은 엄청 무섭기만 했다.
며칠전 그때 그 느낌이 언덕길에서 떠올라
순간 오른발 떼기가 멈칫 무섭기만 했다.)
나랑은 전혀 상관없던 5월 1일이 공휴일이 되어
조금은 연관성이 생긴 오늘 아침.
다른 사람들도 모두 연휴 시작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듯
일어나자마자 살펴본 브런치 오늘의 조회수는 2였다.
다들 즐겁고 의미있는 연휴가 되기를 바래본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땅에 떨어진 저 꽃을 물꽂이 해놓고
나 혼자 사진찍고 좋아했다만
다음 주 고등학교 강의가 없으니(체험학습일이다.)
내가 안 나가는(그 실험실은 나만 사용한다.)
2주 동안 저 고들빼기꽃이 버텨줄 것인가가
슬며시 걱정이 된다.
후배에게 물을 갈아주라고 부탁의 말을 남기더라도 4일이나 지나야하는데 말이다.
할 수 없다. 저 꽃의 운명이다.
땅에 떨어졌을때 이미 운이 다했던 것이었다.
너무 애닲게 생각하지 않겠다.
누군가의 인생은 어찌 들여다보면
애닲지않은 것이 없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