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덕질의 끝은 어디인가?

시한부 덕질임을 알고 있지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 나이에 평생 안해본 덕질에 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확실한 팩트 촌철 살인을 하는 T였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친다고(적어도 그렇게 노력한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무한 애정을 준 경우는 아들 녀석을 제외하고는 단언코 없었다.

그랬던 내가 요즈음 덕질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그 대상은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인 개인에 대한 덕질이라기보다는

내가 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사람인양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무한 애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가끔 그런 조짐이 보이기는 했었다.

처음으로 느낀 것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주일을 마친 토요일 유달리 볼 TV 프로그램이 없는 날,

저녁시간에 밥을 먹으며 함께 호호하하 웃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똘똘한 느낌은 별로 없는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았었다.

특히 레트로 형식으로 해체했던 <젝스키스>가 다시 모여서

왕년의 인기곡을 부르는 그 회차에 꽂혀서 여러번 돌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에는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젝스키스>에도 <무한도전>에도 애정이 자연스럽게 식어갔는데

그 주된 요인은 구성원들의 초심을 잃어보이는 자세였던 것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잠깐 잠깐씩 드라마에 호기심을 나타낸 몇 번이 있었다.

빈센조, 천원짜리 변호사, 힘쎈 여자 시리즈, 스토브리그 등이 있었는데

드라마 종영 후가 되면 슬그머니 관심도 사라져서 매몰찬 나의 마음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시보고 다시보는 그런 열정과 드라마속 인물을 연기한 배우를 찾아보는 그런 덕질을 해본 적은 없었다.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는 스포츠 스타에 관심이 더욱 생긴다.

평소에도 웬만한 대표급 스포츠 스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만

비인기종목에서 애쓰는 그들의 노고와 열정에 새삼 박수를 보내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올림픽때는 펜싱의 멋진 어펜져스에 환호했고 그들의 인스타에 가서 좋아요를 눌렀으며 그들이 나온 예능을 보기도 하였다.

잘 생겨서는 아니고 연습하고 어려움을 견뎌낸 모습을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어서였다.

올 파리 올림픽에서도 분명 내 눈에 그 모습이 보이는 라이징 스타가 있을 것이라 기대되며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새로운 스타에게 관심과 애정을 줄것이 틀림없지만 지속적인 덕질로 이어질 확률은 예전의 경우로 본다면 높지않다.


그런데 이번 덕질의 대상인 <최강야구>는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아무리 과거 좋아했던 야구였지만 까맣게 잊고 산 시절이 얼마인데

내 삶속에 다시 들어와서 슬며시 프로야구, 대학야구 심지어 고등학교 청룡기 시합을 몇 십년 만에 보고 있는 내가 낯설기조차 하다.(청룡기 시합이 내 첫 야구 직관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떻게 야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반 남자 친구들 중에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축구공은 하나만 있으면 여러명이 같이 놀 수 있지만

야구는 일단 장비가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있는 놀이였다.

5학년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우리반 친구들로 야구팀이 구성되었다.

옆반들과 시합이 붙었던 날, 운동장을 질주하면서 흙먼지 속에 있었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나는 평소 갈고닦은 야구 능력으로 남학생들에게 잘난척하면서 야구 규칙을 알려주고 응원단장을 자처했으며 나름의 작전야구도 구사했었다.

장효조, 최동원, 박노준, 이만수, 김재박 등 동시대 야구 선수에 환호했고

그 뒤를 이은 이승엽, 박용택, 정근우등의 활약도 꿰차고 있었으며

올림픽과 프리미어 12 우승할때까지는 두근두근 야구를 보곤 했었지만

그 뒤로는 육아와 현생 살이, 야구 선수들의 잃어버린 치열함에 기인하여 관심에서 멀어진지 꽤 되었었다.

그러던 내가 <최강야구>에 빠져서

수십년 만에 직관을 가고

잘 되지 않는 티켓팅에 울분을 토하고

각 종 궂즈를 줄서서 사고

관련 갤러리에 가서 최신 정보를 염탐하고

콜라보를 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메뉴인 햄버거를 사먹기도 했다.

이런 내가 비정상인 것을 물론 알고

머지않아 그 관심이 점점 엷어질 것도 알고 있지만

당분간은 덕질을 즐겨보려 한다.

아무런 관심거리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나저나 직관을 가긴 가는데(이번에는 나랑 같은 덕질중인 후배가 표를 구했다.) 피배 요정이 될까봐 몹시 두다.

패배 요정의 아픔은 덕질의 기쁨을 누를 정도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패배의 아픔을 잘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좋아라하는 <최강야구> 라도 패배한 회차는 돌려보기는 커녕 한번 제대로 보는 것도 힘들다.

패배와 실패가 가져다주는 아픔은 너무 크고 진해서 다음 승리로 덮기 전에는 보는것조차 많이 힘들기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패배와 실패의 원인이 나이듬 때문에 기인하는 것임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전에는 능숙하던 일들이 점점 안되어가는 나를 보는 듯 하여 말이다.

덕질의 근간에는 나를 대비하는 투사의 기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야구> 화이팅이다.

내 마음속으로는 올해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있는 시한부 덕질이다.

친구들을 보면 손자, 손녀가 마지막 덕질의 대상이 되는 듯 하다.

나도 그 기쁨을 누리게 될때까지는 <최강야구> 덕질을 조금은 더 즐겨보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