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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73

미지의 음료에 들어있는 영양소를 찾아라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중요한 실험을 앞두고 있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아니다. 어제 일찍 잤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신빙성있는 추론이겠다.

요새 우리 학교 야구부 학생들은 계속 시합 중이다.

야구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몹시 힘든 법이다.

그렇게 열심히 두 가지를 했는데

프로 입단에 실패한 많은 사람들을 본 그저께는 마냥 안타까운 날이였다.


운동부가 있는 학교에서의 수업은 다른 학교와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야구부가 없이 중요한 내용의 수업을 하고 성적에 들어가는 수행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준비물이 많이 필요한 실험을

야구부와 야구부 아닌 학생들로 두 번에 나누어

시간을 다시 잡아서 진행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오늘 오전 4시간에만 야구부들이 수업에 참여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나는 오늘 수업 시간표를 조절하여 4시간 연속으로 수행평가 실험을 진행하려 한다.

4시간 연강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아마 그래서 오늘 일찍 깬 것일 수도 있다.

야구부 녀석들도 중요한 시합날이면 일찍 깨지 않을까나?

오늘의 실험은 준비물이 엄청 많은 영양소 검출과 침의 소화작용 실험 두 가지이다.

두 가지를 한번에 같이 하는 이유는 비슷한 준비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미지의 음료 6개를 준비하였다.

A~F라고 라벨만 붙여두었고 무엇이 어떤 음료인지는 알려주지는 않지만

6개 음료의 이름은 칠판에 적어둘 예정이다.

이 음료들로 녹말, 포도당, 단백질, 지방 영양소 검출 실험을 하고

(특정 시약에 반응하여 색이 변하는 실험이 있다. 물론 그 반응이 일어나는 약품과 색의 변화는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각 라벨별 용액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태블릿을 활용하여 그 음료 성분은 찾아볼 수 있다.)

교과서에는 여러 개의 시험관을 이용해서 실험하게 되어 있지만

나는 소량의 약품만 사용하는 small scale Chemistry 로 진행하기 위하여

6개의 구멍이 있는 홈판을 사용하려 한다.

아무리 지구와 사람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화학 약품이라해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실험 기구 정리 등에 많은 물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한 장의 반응 결과표와 검출 결과 사진을 구글 클래스룸에 올리는 것으로 끝이다.

과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결과는 투명하게 끝내는 실험이 잘 구성된 실험이다.


침의 소화과정 실험은 침을 모으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평소에는 길 가다가도 침을 잘 뱉는 것 같은데 실험을 위해서 침을 모으라하면 침이 안나온다고 호소한다.

아마 오늘도 그렇지 싶지만 그래도 각 조에서 십시일반 침을 모으면 되지 싶다.

지난번 혈액 관찰 실험도 용감한 희망자들이 있어서 잘 진행된 것처럼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실험 결과를 올리는 구글 클래스룸 과제도 만들어 두었고

이제 이 글을 쓰면서 전투 능력도 올렸고(글을 쓰면 머리정리가 된다.)

어제 실무사 선생님과 기구 준비를 하면서 시뮬레이션도 했으니

이제 학생들과의 즐거운 실험 수업을 진행만 하면 되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실험을 하는 날은

평소보다 두 배는 힘들고 세 배는 시끄럽고 분주할 것이지만

아이들의 눈빛에서는 호기심과 신기함이 보이니 그만큼은 참을 수 있을 것이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내 생애 마지막 영양소 검출과 침 실험인 셈이다.


배경 사진은 얼마전 저녁 산책중 어느 건물앞에 만들어진 별자리 사진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동물과 에너지 다음에는 천문학 부분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오전 4시간 연강으로 실험하고 점심먹고 실험기구 치우고 실험대에 길게 누웠다. 침뱉는건 여전히 싫어하고 쌀음료랬더니 막걸리냐고 물었다. 생각보다 잘했으니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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