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스물 두번째

명절 첫 날의 여유롭지만 더웠던 오전 산책

by 태생적 오지라퍼

추석 연휴 첫날은 염색으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명절날은 그랬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흰 머리가 완연한 머리카락을 보여주는 일을 조금이나마 피하고 싶다는 생각의 발로였을것이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염색과 머리를 다듬는 것으로 친척들에게 나만의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고자 함이다.

두 달 만에 한번씩 염색을 하러 나서는 일은 젊은이의 거리를 구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친구따라 미용실을 간다고 홍대앞으로 머리를 하러 다닌지 1년 정도 된 것 같다.

목동에서는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볼륨업의 대가 미용실이,

사직동에서는 머리를 시원하고도 세게 박박 감아주는 미용실이,

신용산에서는 가격은 많이 비쌌지만 내 맘에 꼭 들게 머리를 해주는 센스 만점 원장님이 있었다.


미용실 예약이 11시라고 생각했었다. 지하철에서 내릴때까지는...

홍대 입구역에 내리면서 갑자기 예약이 11시가 아니고 11시 30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의 톡을 살펴보니 11시 30분이 맞았다.

여유 있게 온다고 지하철역에 내린 시간은 10시 30분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빈 시간이 남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럴 때 가장 좋은 것이 동네 산책이다.

홍대에서 합정역쪽으로만 갔었지 반대편은 안 가본지 오래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연남동 일대의 연트럴파크쪽으로 발길이 닿았다.

명절 연휴 첫날 오전 연남동에는 오픈을 준비하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어딘가를 찾는 외국인들과 산책하는 강아지와 견주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휴일을 맞아 평화로운 모습이다.

이 평화로운 모습에 방점을 찍는 것은 길 중앙의 작은 물길과 주변의 식물들이 이제는 자리를 잡아서 어색하지 않은 골목의 모습이다.

골목을 산책하다보면 그 거리마다 주를 이루는 식물종이 있기 마련이다.

서울의 큰 대로는 전문가의 힘을 빌려 커다란 항아리에 식물을 주기적으로 배치하는데

어느 구에 있는지에 따라 그 종류는 다르다.(아마도 구청마다 그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있는 듯하고 그 전문가들의 스타일이 다 다른 것 같았다. 각각 달라지는 식물을 구경하는 맛이 있다.)

그런데 연남동 골목의 주된 식물들은 일부러 그곳에 심었다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가꾼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물론 처음에는 누군가가 새로운 모종을 뿌리고 가꾸고 어울림을 시도했겠으나

오래되면 이제는 그 누군가가 애쓰지 않아도 식물들과 주변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법이다.

그 사이에 터를 잡고 군집으로 살아남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과학에서는 그것을 적응과 진화라고 부른다.

연남동은 식물과 주변거리와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느 것도 튀지 않는 조화를 이룬 곳으로 나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딱 한 시간의 의도치않았던 산책.

아직은 꽤 더워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했던것은 안비밀이다.

그리고 4월에 피는 명자나무에 오늘 꽃이 활짝 피어 있던 역주행을 발견한 것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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