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스물 네번째
주말 아침, 한강대교 건너기
신용산역에서 살게 된 것은 순전히 아들 녀석의 축구 사랑 때문이었다.
신용산역에는 실내에 미니 축구장이 있댄다.
실제 가본 적은 없다. 근처까지만 가봤고 방송으로는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축구 선수를 꿈꾸었던 아들 녀석은(대다수 아들들의 어릴 적 꿈이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보상을 주말에 하는 축구팀에서 받으려하나보다.
그래서인지 신용산역으로의 이사를 적극적으로 원했었다.
집에서 5분 컷으로 축구를 할 수 있었던 4년은 참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이사로 조금은 멀어졌으나 여전히 출장이 아닌 토요일 아침은 빠짐없이 신용산행이다.
오늘은 그 이동에 나도 함께 나섰다. 더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하게 산책을 하려 함이다.
집에 갈 때 다시 차를 얻어타야 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8시에서 10시, 단 두 시간이다.
자주 걷던 산책 코스로 나섰다.
신용산역에서 노들섬으로 진입하려면 용산역 뒤편의 오래된 골목을 지나게 되는데
이제는 반 이상 멋진 식당과 카페로 탈바꿈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봄의 산책과는 느낌이 또 달라진 골목이다.
그 골목 초입에 지금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생과 조카 녀석과 함께 가서 맛나게 먹었던
걸쭉한 느낌의 진한 국물 감자탕집이 있었다.
동생이 본격적으로 아파서 걷지 못하게 된 후로도
그 감자탕이 먹고 싶다하여 몇 번 포장해서 가져다 준 적이 있었는데(지금은 물론 입으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그 집주인이 유행 바람을 타고 가게 월세를 엄청 올리는 바람에
10년 정도 한 감자탕집을 접을 수 밖에 없다는 내 나이 또래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내가 한강불꽃놀이 명당이었던 신용산역집을 떠난 이유와 똑같다.
지금 그 감자탕집 자리에는 퓨전 음식점이 멋지게 들어서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한강대교를 끝까지 건너보았다.
산책 중 화장실이 급해서 들어갔던 편의점은 멋진 수상 호텔로 변화되어 있었고
노들섬 공원에서는 오늘 밤에 열리는 행사 무대를 만드느라 스탭들이 분주했다.
한강을 바라보며 라면과 피자를 먹었던 식당은 다행이 남아있었고
철로 만든 사슴 대신 새로운 조형물이 입구에 장식되어 있었다.
보통은 반쯤 건너 노들섬 공원을 보고 다시 길을 건너 돌아오는 코스가 주된 산책 경로였으나
오늘은 이제 가면 언제 또 건너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끝까지 건너보았다.
큰 차가 지나가면 다리가 약간씩은 흔들리는 느낌도 받았으나 그 다리 옆으로 보이는 여의도의 느낌은 색달랐다.
언젠가부터 여의도의 랜드마크가 63빌딩에서 저 빨간 빌딩으로 바뀐것 같다.
철교위로 교차하는 지하철과 구름 그리고 한강을 보면 어느 외국 유명 관광지가 부럽지 않다.
일몰 즈음에는 더 멋지다.
요새 인스타에 많이 뜨곤 한다.
한강대교 건너편 공원에는 아침부터 축구를 하는 많은 어린이들과 그 뒷바라지를 나온 부모님들이 보였고
(나는 어린 시절 아들 녀석을 이렇게 보조해주지는 못했다. 그때 시켜주었더라도 절대 손흥민 선수처럼 되지는 못했을것이라고 비겁한 변명을 달아본다.)
러닝과 자전거를 타는 많은 부지런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한강대교를 반대편으로 건너오면서
그 유명한 BTS 회사도 보고(요새는 다른 의미로 유명한 것 같더라만)
인스타에 자주 등장하는 용리단길 맛집들도 보고(물론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은 없었지만)
용산역에서는 단풍놀이를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즐거운 여행 전 표정도 보았고
단풍이 반반쯤 들어가는 나무들과 역주행으로 꽃이 핀 벚꽃 몇 송이가(이제 얘네들은 내년에는 꽃을 못피운다.) 공존하는 신기한 모습도 보았더니
나에게 주어진 가을 두 시간의 산책이 순식간이었다.
축구를 마친 아들과 다시 귀가하는 차안에서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나는 어느 곳에 집을 살 것인가?
이런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극 T인 아들 녀석이 그 꿈을 한방에 박살내준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신용산에 있는 아파트는 못산다고...
걱정마라. 로또 1등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당첨되고 고민해도 늦지 않다.
되기만 해봐라...
사실 산책 중에 로또 1장과 긁어보는 복권 1장을 샀으나 아들 녀석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