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생긴 일
기본을 지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씻는 것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은 켤코 아니다.
잠을 잘래, 세수를 할래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 하면 당연히 잠을 자는 것이다.
밥을 먹을래, 목욕을 할래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 하면 당연히 밥을 먹는 것이다.
안 씻어서 느끼는 꿉꿉함은 조금은 참아낼 수 있는 스타일이다.
이런 생각에는 아마도 지금까지 겪었던 목욕탕에서 생긴 일들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였을지도 모른다.
다같이 목욕탕에 가는 것으로 주말의 마무리를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딸만 넷인 우리를 모두 한 번에 데리고 가는 것을 힘겨워하셨다.
두세 살 차이의 올망졸망한 딸 넷을 씻기는 것도 힘에 겨우셨을 것이고
아들 선호 사상이 견고했던 그 시절 주위 아주머니들의 혀차는 소리도 듣기 싫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큰 딸인 내가 동생 한 명과 함께 목욕을 하고 오면
엄마가 나머지 두 명을 데리고 목욕을 가는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셨다.
그런데 사실 나도 고작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나이인데
내 몸 구석구석 닦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섯 살 아래 셋째를 머리 감기고 씻기는 일은 버겁기 짝이 없었다.
간신히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빗는데 동생이 머리빗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지치고 조금은 화가 나서 머리빗을 달라고 큰 소리를 쳤더니(사람이 많아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동생이 가지고 있던 금속빗을 나에게 던졌는데
하필 그 빗의 금속부분이 내 다리 무릎에 콕 박혀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날라오니 피부에 박히더라. 물론 지금은 금속빗 앞 부분에 안전장치가 있지만 그때는 날 것이었다.
나는 괜히 서러워서 피나는 무릎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지만 동생은 그 일을 기억할라나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았던 것 같다.
꽤 여러곳이 깊게 구멍이 났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주말 새벽에 목욕탕을 다니는 루틴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없는 시간에 정신을 차릴 겸 목욕을 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잠에서 깰 듯 말 듯 어두움을 뚫고 목욕탕으로 가고 있었는데(집에서 오분 거리였다.)
앞 쪽에서 비틀거리는 걸음과 진한 술냄새의 아저씨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재빨리 목욕 물품 대야를 잡아당기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나를 잡아채는 손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나는 큰소리를 지르며 목욕 대야를 그쪽으로 집어던졌다.
“고 3이에요. 나는 고3 이란말이에요.”
그 술취한 아저씨는 그 말에 “에이, 난 어른인줄 알았네. 덩치가 왜 그렇게 커.” 라면서 제 갈 길을 갔다.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이었던가?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새벽 목욕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엄마에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사우나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낀 경험까지 보태져서
나는 목욕탕 가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기저에는 살이 쪄서 창피한 것도 많이 있었을 것이나
이제는 뚱뚱하지 않는데도 집에서 간단하게 씻는 것을 선호한다.
요새는 주말 오후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작은 사우나에서 간단하게 씻는 것을 다시 루틴으로 삼고 있다.
티눈으로 인한 발가락의 피로 회복 의미로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을 치료 차원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조금 과장해서 심장마비가 올 뻔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샤워기 물을 틀었는데 아뿔싸, 찬물로 세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슴과 피부가 순간 찌릿찌릿해졌다. 그리고는 놀람과 함께 화가 났다.
공용으로 쓰는 샤워기에서 자신의 컨디션과 스타일에 따라 찬 물 샤워를 했다고 치자.
갈때는 다시 중간 온도를 맞추어 놓고 가는 것이 에티켓 아닐까?
배려심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한대로 화가 난다.
이제는 너도 나도 찬 물이 싫어지는 시기이다.
나는 한 여름 빼놓고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지 않는 노인네 스타일이다.
찬물로 머리 감은 기억은 대학교 1학년 친구들과의 강원도 여행 민박집에서를 제외하고는 없다.
오늘 갑자기 찬물 샤워 벼락을 맞고는 지금까지 나에게 닥쳤던 목욕탕에서의 사건들이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그렇다. 모든 일은 계기가 있어야 생각이 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