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스무번째

이름모를 골목에서 발견하는 기쁨들

by 태생적 오지라퍼

정말 오랜만에 새벽에 비가 쏟아졌다. 더위가 조금은 가시려나...

아들 녀석 강원도쪽 출장일이라 짐도 많은데 비까지 내리니 힘든 출근길을 태워주러 함께 집을 나섰다.

내려주고 오는 길에 얼마전부터 경고문구가 나타난 차량의 엔진오일도 교환할겸해서 말이다.

강서 양천구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중구쪽으로 학교를 옮긴 후 서울 시내에 대해 조금은 알게되었지만

아들 녀석 회사가 옮겨간 강동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1도 없다.

나에겐 멀어도 너무 먼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야 서울살이 마지막이 되어서야 강동을 몇 번 가보게 되다니 사람 일 참 모르는 법이다.


아들 녀석을 내려주고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자동차 A/S 센터에 들렀다.

엔진오일 교환이라고 미리 예약했으나

오래된 차량을 보니 이때다 싶은지(무료 점검 기간이 끝났으므로)

정기점검도 하자, 에어컨 냉매랑 필터도 갈자 등등 이야기를 건넨다.

작년 늦가을에 타이어를 모두 교체하면서 전반적인 것을 다 점검했는데 말이다.

내가 호구처럼 보이나보다 생각하면 살짝 기분이 나빠진다.

엔진오일만 교체해달라고 이야기를 해두고 45분 정도의 소요 시간동안 그 동네 산책에 나섰다.

비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다행히 기온도 많이 높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맞은편 카페에서 우아하게 따뜻한 커피나 한잔 하려 했었는데(지난번 오랫만에 먹은 아아는 너무 썼다.)

문을 열어보니 카페의 에어컨이 너무 세서 도저히 45분 동안 거기 있을 수 없겠다 싶어서 나온 것이다.

코로나 19와 냉방병은 유사 증상을 나타낸다.

또 아프고 싶지는 않다.


큰 대로변에서 한 블록 들어갔더니 오래된 개인주택과 빌라들로 이루어진 골목과 학교 입구가 나타났다.

이런 길목에는 무조건 오래된 나무들과 꽃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외관의 빌라들이지만 구성원중에 누군가는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대부분 나이가 드신 분들임에 틀림없다.)

개인주택 앞마당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질 수 밖에 없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보인다.

밤에 피는 분꽃들은 다 오므라들었지만

오래된 패랭이꽃 종류들이 고유의 색을 뽐내고

아직은 힘이 남아있는 여름 꽃들이 막바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목 중간 중간에 디자인이 멋지게 리모델링되어 있는 작은 가게 들이 눈이 띈다.

꽃집도 있고 브런치 카페도 있고 스시집도 있고 이제 막 문을 여는 빵집도 있다.

나는 건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아마도 1호 미래학교를 리모델링하는 과정에 동참해서 일지도 모른다.

특히 회색 벽돌 건물과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좋아한다.(돈은 없어도 눈은 높다.)

평생 무채색에 마음이 가는 스타일인가보다. 옷이나 건축이나 사람이나 말이다.

골목에 숨어있는 작은 사이즈의 건물들이 멋지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보여줄 때

건축은 자연과학이자 동시에 예술 분야의 융합적 산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오래된 골목에서 찾아보는 나만의 건축 공부로 엔진오일 교환 45분이 순삭되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짧은 자양로와 광나루로 사이의 이름 모를 골목 산책에서

가장 큰 기쁨은 깔끔한 반찬가게를 만났다는 것이다.

새우젓갈 작은 거, 케일쌈밥, 먹음직스러운 총각김치를 조금 샀다.

오늘의 아침 산책이 나의 집나간 식욕을 불러일으켜주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학교 공사 관계로 개학이 늦어지는 것이 마냥 고마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