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열 여섯번째

가슴 떨리는 추억의 혜화역 주변길

by 태생적 오지라퍼

힘든 과학캠프를 마치고 다음 날은 심사를 위해 오랜만에 서울과고에 갔다.

사실 전날 힘들 것이 뻔히 예상되어 거절을 할까도 생각했으나

선배님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사실 거절이 쉽지 않았고

다음 날 아무 일정을 안 잡아놓으면 오히려 축쳐져서 탈이 나는

나의 과거 행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정이 있으면 긴장하고 긴장을 하면 정신을 차리고 버티게 되니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혜화역 주변을 지나갔다.

일이 있어 그곳을 가더라도 마로니에 공원 근처나 낙산도성길 산책을 했을 뿐

혜화역 사거리를 지나가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 길은 참으로 마음 아프고 설레던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었었다. 나에게는...


내가 그 길을 처음으로 갔던 때는 아마도 대학교 2학년때 쯤이지 싶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나와 생일이 같은 친구,

완벽하고 스마트하다 못해 두 번째 생을 사는 것 같이 여유롭던 친구,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가장 자신없어하는 그림도 잘 그리던 친구.

그의 제안으로 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술반 동아리의 인물화 모델을 했었었다.

주 1회 친구를 볼수 있다는 기쁨보다 어색한 포즈 취하기가 더욱 힘들었었던 그곳에서

인고의 그림 그리기 시간이 끝나고 나면 혜화역 사거리의 식당에 들렀었다.

수제비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김치찌개도 먹었던 2달 여의 시간이 지나고 났더니

혜화역 사거리는 꽤 친숙해졌고 그 친구는 더 멋져보였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를 그린 멋진 인물화 그림이 남겨졌다. 지금도 있는데 어떻게 버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한 참 뒤 나는 다시 그 거리를 걸어다니는 일이 생겼었다.

누군가를 그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한 일들이

그 골목에서 일어났다.

큰 거리가 아니고 혜화역에서 서울과고로 걸어가는 그 언덕길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길과 골목들을 어제 우연히 서울과고로 출장갔다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제주 바다 나들이가 갑자기 생각났던 그 날과 같았다.


올라갈때는 마을버스를 탔으나 내려올때는 그 골목을 찾아보려고 일부러 혼자 걸어내려왔다.

여기였나 저기였나를 살펴보아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아파트도 생겨나고 기억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총명한 사람도 찾기는 힘들다 싶었을 때

선명하게 그 골목 가운데 그 빌라라고 추정되는 곳이,

내가 주로 서성이던 서있었던 그 자리라고 보이는 곳이 저쪽 끝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곳을 확인하러 가지는 않았다.

거기 그 즈음에 그냥 있는것이면 되었다.

가보면 뭐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갔음을 느꼈으면 되었다.

출장으로 그 때가 기억난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면 되었다.(날은 무지 습하고 더웠다.)


그리고는 혜화역으로 걸어오는 길에 아직도 여전해보이는 학림다방을 보았다.

지금은 촌스럽기만 한 학림다방이지만 그 시대의 핫플 중의 핫플이었던 곳이다.

몇번이나 사라질 위기를 극복했다는 소리도 들었었다.

올려다보니 2층 한쪽 끝에서 누군가와 함께였던 그 시절의 내가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학림다방에서 차 한잔 마셔볼까 하는 생각은 접었다.

여럿이서는 한번 들어가보겠는데 혼자는 그렇다.

멋져보이거나 너무 후져보이거나 일것이다. 아마도 후자일것 같다.

학림다방을 찾는 사람들은 추억을 찾거나 추억을 만드는 사람일거다.

성균관대 뒤편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과 낙산공원 주변, 동성고, 경신고, 서울과고, 서울국제고 주변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나는 혜화역 주변이라 나혼자만의 정의를 내린다.

그 주변에서 나는 기쁨도 있었고 아픔도 많이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도 하였었고 응급실에 입원도 해봤으며 시아버님 상도 치루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곳에서의 가슴떨림이 있었음을 참으로 오랫만에 기억해냈다.

그 길을 다시 걷게 해준 출장이 다시금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서울과고에서 과학을 좋아하는 많은 청소년들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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